2010.01.09 12:08

능엄경 - 운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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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第一

 

唐天竺沙門般刺密諦譯

烏萇國沙門彌伽釋迦譯語

菩薩戒弟子前正諫大夫同中書門下平章事淸河房融筆授

楊州郡雲岳山奉先寺沙門 耘虛龍夏 飜譯 幷 註解

 

一. 序 分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一時에 佛이 室羅筏城 祗桓精舍에서 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과 함께 계시었으니, 다 漏가 없어진 大阿羅漢들이라, 佛子로 住持하면서 모든 有에서 잘 超出하였고, 能히 여러 國土에서 威儀를 成就하며, 佛을 따라 法輪을 굴리어 遺囑을 堪任할만 하며, 毗尼를 嚴淨히 하여 三界에 模範이 되고 應身이 無量하여 衆生을 濟度하여 解脫케 하며, 未來를 拔濟하여 塵累에서 超越케 하는 이들이다.

그 이름은 大智舍利弗, 摩訶目犍連, 摩訶拘絺羅, 富樓那彌多羅尼子, 須菩提, 優波尼沙陀 等이 上首가 되었다.

또 無量한 辟支佛과 無學과 그의 初心들이 함께 佛의 處所에 왔으니, 마침 比丘들이 夏安居를 마치고 自恣하는 때이며, 十方의 菩薩들이 疑心을 물어 決斷하려고, 慈悲와 威嚴을 받자와 秘密한 뜻을 듣자오려 하였다.

卽時에 如來께서 法座를 펴고 편안히 앉으사 會衆을 爲하여 深奧한 이치를 말씀하시니, 法筵에 모였던 淸衆은 未曾有함을 얻었으며, 迦陵頻伽 같은 仙音이 十方世界에 가득하매 恒河沙 菩薩들이 道場에 모여 오는데 文殊師利가 上首가 되었다.

그때 波斯匿王이 그 父王을 爲하여 諱日에 齋를 經營하면서, 佛을 宮掖으로 請하여 自身이 如來를 迎接하고, 珍羞와 無上한 妙味를 크게 차리고 여러 大菩薩을 몸소 맞아 들이었다.

城中에 또 長者와 居士들이 있어 同時에 스님네에게 공양하려 하여 佛이 오셔서 應供하기를 바라매, 佛이 文殊에게 勅하여 여러 菩薩과 阿羅漢들을 나누어 領率하고 가서 齋主의 공양에 應하라 하시었다.

마침 阿難은 미리 別請을 받고 멀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여 僧次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上座와 阿闍梨도 없이 혼자 돌아오던 길인데 그 날에 공양이 없었다. 그때 阿難은 應器를 들고 지나오던 城中에서 차례로 乞食하려 하면서 생각하기를, 最後의 檀越을 얻어 齋主를 삼으려 하였다. 그래서 淸淨한 刹帝利나 더러운 旃陀羅를 勿論하고, 平等한 慈悲를 行하여 微賤한 이도 擇하지 않으려 하였으니, 그 發意는 一切衆生의 無量한 功德을 圓滿히 成就하려 함이다.

또 阿難은 벌써부터 如來께서 須菩提와 大迦葉을 꾸중하시기를 阿羅漢이 되고서도 마음이 平等하지 못하다 하심을 알았고 如來께서는 툭 터놓고 아무 制限도 없어서, 여러 의심과 비방을 받지 않으시는 줄을 仰慕하였으므로, 城門을 지나서 郭門으로 걸어가면서 威儀를 엄정히 하고 齋하는 法을 엄숙하게 하였다.

그때 阿難이 乞食하던 次第에 婬室을 지나다가 大幻術하는 摩登伽女를 만났는데, 그는 娑毗迦羅의 先梵天呪로 阿難을 붙들고 婬室로 들어가서 음란한 몸으로 만지고 비비면서 阿難의 戒體를 毁損하려하였다.

如來께서 阿難이 摩登伽의 妖術에 붙들린 줄을 아시고, 공양을 마치시면서 곧 돌아오시니, 王과 大臣과 長者와 居士들이 따라와서, 佛의 法要를 듣자오려 하였다.

그때 世尊이 頂上으로 百가지 보배롭고 無畏한 光明을 놓으시고, 光明속에서는 千葉 연꼿이 出生하였는데, 佛의 化身이 跏趺하고 앉으사 神呪를 말씀하여, 文殊師利에게 勅하여 神呪를 가지고 가서 救護하라 하였다. 惡呪가 消滅하거늘, 阿難과 摩登伽를 이끌고 佛의 處所에 돌아왔다.

 

二. 正 宗 分

 

첫째, 奢摩他를 말하여 眞心을 알게 하다

 

1. 妄心을 밝히다

 

阿難이 佛을 뵈옵고 頂禮하고 슬피 울면서, 無始以來로 一向으로 多聞만하고 道力이 온전치 못한 것을 한탄하고, 十方 如來께서 菩提를 이루시던 妙한 奢摩他와 三摩와 禪那의 最初方便을 殷勤하게 請하였다.

이때에 또 恒河沙 菩薩과 十方의 阿羅漢과 辟支佛等이 듣잡기를 願하여 물러가 앉아 잠잠하게 聖旨를 기다리고 있었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너와내가 同氣라 情誼가 天倫과 같으니라. 처음 發心할 적에 나의 法中에서 무슨 勝相을 보았기에 世間의 深重한 恩愛를 한꺼번에 버렸느냐?』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저는 如來의 三十二相이 殊勝하게 絶妙하고 形體가 맑게 사무침이 瑠璃와 같음을 뵈옵고, 항상 생각하기를, 이것은 欲愛로 생긴 것이 아니리니, 왜냐하면 欲氣는 麤하고 濁하며, 비린내 누린내가 어울리고, 고름과 피가 雜亂한 것이오매, 저렇게 깨끗하게 妙하고 밝은 紫金光 덩어리를 發生하지 못하리라 하옵고, 渴仰하여 佛을 따라 머리를 깎았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善哉라, 阿難아, 一切衆生이 無始以來로 生死가 相續함은, 다 常住하는 眞心의 自性이 淨明한 當體는 알지 못하고, 妄想으로 作用한 탓이니, 이 妄想이 참되지 못하므로 輪轉하게 되는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네가 이제 無上菩提의 참되고 밝은 성을 硏究하려거든, 마땅히 直心으로 나의 묻는 것을 대답하라. 十方의 如來께서 同一한 道로 生死에서 出離하시나니 모두 直心이니라. 마음과 말이 곧은 연고로, 乃至 처음부터 나중까지의 中間에 모든 委曲한 相이 永遠히 없느니라.

阿難아, 내가 이제 네게 묻노라. 네가 처음 發心할 적에 如來의 三十二相을 말미암았다 하니, 무엇으로 보았으며, 무엇이 愛樂하였느냐?』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이렇게 愛樂함은 저의 마음과 눈으로 하였나이다. 눈으로는 如來의 거룩한 相을 보옵고, 마음으로는 愛樂하였으므로 제가 發心하여 生死를 버리려 하였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말한 바와 같이, 참으로 愛樂함은 마음과 눈으로 말미암느니라. 만일 마음과 눈이 있는 데를 알지 못하면, 塵勞를 항복 받을 수 없느니라. 마치 國王이 대적의 侵掠을 받고, 軍隊를 보내어 討伐할 적에, 그 軍隊가 賊兵이 있는 데를 알아야 하는 것과 같느니라. 너로 하여금 流轉케 함은 마음과 눈이 허물이니, 내 이제 네게 묻노라. 마음과 눈이 어디 있느냐?』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一切 世間에 열가지 異生이 마음은 모두 몸 속에 있사오며, 如來의 靑蓮華같은 눈은 佛의 얼굴에 있삽고, 저의 浮根四塵은 제 얼굴에 있아오니, 이와 같이 認識하는 마음은 實로 몸 속에 있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지금 如來의 講堂에 있어서 祗陀林을 보나니, 지금 어디 있느냐?』

『世尊이시여, 이 重閣으로 된 淸淨한 講堂은 給孤獨園에 있삽고, 祇陀林은 講堂밖에 있나이다.』

『阿難아, 네가 講堂안에 있어서 먼저 무엇을 보느냐?』

『世尊이시여, 제가 講堂안에서 먼저 如來를 보옵고, 다음에 大衆을 보고, 밖으로 내다보아야 祗陀林과 給孤獨園을 보나이다.』

『阿難아, 네가 祗陀林과 給孤獨園을 본다 하니, 어떻게 보게 되느냐.』

『世尊이시여, 이 大講堂이 門과 窓이 훨씬 열렀사옵기 제가 講堂안에서 멀리 바라볼 수 있나이다.』

그때 世尊이 大衆 가운데서 金色팔을 펴서 阿難의 정수리를 만지시고 阿難과 大衆에게 말씀하였다.

『三摩提가 있으니, 이름이 大佛頂首楞嚴王이다. 萬行을 具足하였으며, 十方의 如來가 한 門으로 超出하여 妙하게 莊嚴하는 길이니, 네가 자세히 들으라.』

阿難이 頂禮하고 慈悲하신 말씀을 듣잡고 있었다.

佛이 阿難에게 말하였다.

『네가 말하기를, 몸이 講堂 안에 있어서 門과 窓이 훨씬 열리었으므로 祗陀林과 給孤獨園을 본다 하니, 어떤 衆生이든지 이 講堂 안에 있어서, 如來를 보지 못하면서 講堂 밖을 보는 이가 있겠느냐?』

阿難이 대답하였다.

『世尊이시여, 講堂 안에 있는 이가 如來는 보지 못하면서, 祗陀林과 샘을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나이다.』

『阿難아, 너도 그러하니라. 너의 神靈한 마음이 온갖 것을 分明하게 알거니와 만일 現在에 分明하게 아는 마음이 몸 속에 있다면, 몸속엣 것들을 分明하게 알아야 할 터인데, 어떤 衆生이나 먼저 몸 속을 보고 나중에 밖엣 것을 보는 이가 있겠느냐? 비록 염통. 肝. 지라. 밥통 같은 것은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손톱이 나고, 머리카락이 자라고, 힘줄이 움직이고 脈이 뛰는 것 쯤은 알아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몸 속엣 것을 알지 못한다면 밖엣 것은 어떻게 아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네 말 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속에 있다는 말이 옳지 아니 하니라.』

阿難이 머리를 조아리고 佛께 사뢰었다.

『제가 이제 如來의 이러한 法門을 듣삽고, 제 마음이 몸밖에 있는 줄을 알았나이다. 그 까닭을 말하오면, 마치 방 안에 燈을 켜면 그 등불의 빛이 먼저 방 안을 비추고, 다음에 門을 通하여 뜰과 마당에 비추나이다. 一切 衆生이 몸 속은 보지 못하면서 몸 밖엣 것만 보는 것은, 마치 방밖에 있는 등불 빛이 방안을 비추지 못함과 같나이다. 이 이치가 반드시 分明하여 疑惑할 것이 없사오니, 佛의 了義와 같삽고 잘못되지 아니하겠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이 比丘들이 아까 나를 따라 室羅筏城에서 摶食을 빌어가지고 祗陀林에 돌아왔는데, 나는 이미 먹었다마는, 네가 比丘들을 보라, 한사람이 먹어서 여러 사람의 배를 부르게 할 수 있느냐?』

阿難이 대답하였다.

『그럴 수 없나이다, 世尊이시여. 왜냐하면, 이 比丘들이 비록 阿羅漢이오나, 몸과 生命이 같지 않삽거늘, 어떻게 한 사람이 여럿의 배를 부르게 하겠나이까?』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너의 깨닫고 알고 보고 하는 마음이 만일 몸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따로 따로 있어서 서로 關係가 없을 것이니,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은 깨닫지 못하고, 깨달을 것이 몸에 있으면 마음은 알지 못해야 하리라. 내가 지금 兜羅綿 같은 손을 네게 보이노니, 네 눈이 볼 때에 마음이 分別하느냐?』

阿難이 대답하였다.

『그러하오이다, 世尊이시여.』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만일 서로 안다면 어째서 몸밖에 있다 하겠느냐. 그러니까 알아라. 네 말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밖에 있다는 것이 옳지 아니 하니라.』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佛의 말씀과 같사와 속을 보지 못하는 탓으로 몸 속에 있는 것 아니옵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며, 서로 여의지 아니 한 탓으로 몸 밖에도 있지 아니 하오니, 지금 다시 생각하온즉 한 곳에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그 있는 데가 어디냐?』

阿難이 말하였다.

『이 분명하게 아는 마음이 속을 알지 못하면서도 밖엣 것을 잘 보는 터이온즉, 제 생각에는 根 속에 들어 있겠나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瑠璃椀을 두 눈에 댄다면, 비록 물건이 가리웠지마는 조금도 障碍가 되지 아니 하고, 눈이 보는대로 따라서 分別하나이다. 그와 같아서 저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속에 것을 보지 못함은 根에 있는 탓이옵고, 分明하게 밖에 것을 보는 데 障碍가 없음은 根 속에 들어있는 연고이옵니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 말 대로 根 속에 들어 있는 것이 瑠璃 댄 것 같다면, 瑠璃椀을 눈에 댄 사람이 山과 江을 볼 적에 瑠璃를 보느냐, 못 보느냐?』

『그러 하여이다. 世尊이시여, 그 사람이 瑠璃를 눈에 대었으므로 瑠璃를 보겠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 마음이 눈에 瑠璃를 댄 것 같다면, 山과 江을 볼 적에 어째서 눈을 보지 못하느냐? 만일 눈을 본다면, 눈이 對境과 같아서, 따라서 分別한다는 말이 成立하지 못하며, 눈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根속에 들어 있는 것이 瑠璃 댄 것 같다고 하겠느냐?

그러니까, 알아라. 네 말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들어있는 것이 瑠璃 댄 것 같다는 말이 옳지 아니 하니라.』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저는 또 이렇게 생각하나이다. 이 衆生들의 몸이 五臟 六腑는 속에 있삽고, 구멍은 밖에 있사오매, 內臟은 어두운 것이요 구멍은 밝은 것이오니, 제가 佛을 對하여 눈 뜨고 밝은 것 보는 것은 밖엣 것을 본다 하옵고, 눈 감고 어두운 것 보는 것은 속엣 것을 본다 하오면, 그 이치가 어떠하겠나이까?』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볼 적에 그 어두운 對境이 눈과 相對하였느냐, 눈과 相對하지 아니 하였느냐? 만일 눈과 相對하였다면, 어두운 對境이 눈 앞에 있을 터인데, 어떻게 몸 속이라 하겠느냐?

만일 속이라 한다면, 어두운 房안에 있으면서 해와 달과 燈이 없을적에 그 어두운 房속이 모두 너의 三焦와 六腑이겠구나!

만일 相對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보게 되느냐?

만일 밖으로 相對한 것을 보는 이치를 떠나서, 안으로 相對한 것도 본다고 하여서, 눈 감고 어두운 것 보는 것으로 몸 속을 본다고 한다면, 눈 뜨고 밝은 것 볼 적에는 어째서 얼굴을 보지 못하느냐? 만일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으로 相對한다는 理論이 成立되지 못하리라.

만일 얼굴을 본다면, 이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과 눈이 虛空에 있는 것이어늘, 어떻게 속에 있다 하겠느냐?

만일 虛空에 있다면, 그것은 너의 自體라 할 수 없으며, 또 지금 如來가 네 얼굴을 보는 것도 역시 네 몸이라 하겠구나! 그렇다면, 네 눈은 알더라도 몸은 깨닫지 못해야 하리라.

네가 기필코 고집하여 몸도 알고 눈도 안다면, 마땅히 두 알음알이가 있는 것이니, 너 한 사람이 두 부처를 이루어야 하리라. 그러니까 알아라. 네 말에 어두운 것 보는 것이 몸 속을 보는 것이라는 이치가 옳지 아니 하니라.』

阿難이 말하였다.

『저가 일찍 들었나이다. 佛이 四衆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나는 탓으로 여러 가지 法이 나고, 法이 나는 탓으로 여러 가지 마음이 난다]고 하시더이다. 지금 생각하오니, 곧 생각하는 自體가 나의 心性일 것이온즉, 合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이 따라 있는 것이옵고, 속에나 밖에나 中間에 있는 것이 아니겠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 말대로 法이 나는 탓으로 여러 가지 마음이 난다고 하여 合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이 따라 있다고 하거니와, 그 마음이 自體가 없으면 合할 것이 없고, 만일 自體가 없어도 능히 合한다고 하면, 그것은 十九界가 七塵을 因하여 合한다는 말과 같을 것이니, 그럴 이치가 없느니라.

만일 자체가 있다면, 네 손으로 네 몸을 찌를 적에 너의 아는 마음이 속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들어오느냐? 만일 속에서 나온다면 몸 속을 보아야 할 것이고, 밖에서 들어온다면 먼저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니라.』

阿難이 말하였다.

『보는 것은 눈이 하는 일이옵고, 마음은 알기만 하고 눈이 아니온데, 보아야 할 것이란 말씀은 마땅하지 않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만일 눈만 볼 수 있다면, 네가 房 안에 있을 적에 門이 能히 보느냐? 그리고 금방 죽은 이도 눈은 있는 터인즉 마땅히 물건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일 물건을 본다면 어떻게 죽었다 하겠느냐?

阿難아, 또 깨닫고 알고 하는 네 마음이 반드시 自體가 있다면, 그 體가 하나이냐, 여럿이냐? 지금 네 몸이 두루하여 있느냐, 두루하지 아니 하였느냐? 그 體가 하나라면, 네가 손으로 한 활개를 찌를 적에 네 활개가 모두 깨달아야 할 것이며, 만일 모두 깨닫는다면 찌르는 데가 따로 處所가 없을 것이요, 찌르는 데가 따로 있다면 體가 하나라는 것이 될 수 없느니라. 또 體가 여럿이라면 여러 사람이 될 것이니, 어느 體를 너라 하겠느냐?

만일 네 몸에 두루하여 있다면, 앞에 말한바 찌르는 것과 같을 것이요, 두루하지 아니 하였다면, 네 머리를 만지면서 발까지 만져보아라. 머리가 깨닫는다면 발은 만지는 줄을 몰라야 할 것이어늘, 지금 너는 그렇지 아니 하니라. 그러니까 알아라. 合하는 處所를 따라서 마음이 따라 있다는 말이 옳지 아니 하니라.』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저도 들었거니와, 佛께서 文殊等 여러 法王子로 더불어 實相을 말씀하실 적에, [마음은 속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다]고 하셨나이다.

지금 제가 생각하오니, 속에 있다면 보는 바가 없고,밖에 있다면 서로 알지 못할 것이온데, 안으로는 알지 못하므로 속에 있다고 할 수 없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아는 연고로밖에 있다는 것도 옳지 않나이다. 지금 서로 알면서도 안으로는 보지 못하오니, 마땅히 中間에 있겠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네가 中間이라 말하니, 그 中間이 막연하지 아니 하여 있는데가 있으리라. 네가 中間을 推測하여 보라. 中間이 어디 있느냐? 處所에 있느냐, 몸에 있느냐? 만일 몸에 있다면 겉에 있으면 中間이 아니고, 안에 있다면 속에 있는 것과 같으니라.

만일 處所에 있다면 表示할 수 있느냐, 表示할 수 없느냐? 表示할 수 없다면 없는 것과 같고, 表示할 수 있더라도 一定하지 아니하니, 무슨 까닭이냐. 어떤 사람이 表示하여 中間이라 할 때에, 東에서 보면 西가 되고 南에서 보면 北이 되어서, 表示하는 自體가 混雜하니 마음도 雜亂하리라.』

阿難이 말하였다.

『제가 中間이라 말함은 이 두 가지가 아니옵니다. 世尊께서 말씀하심과 같이 眼根과 色塵이 緣이 되어 眼識을 낸다 하였나이다. 眼根은 分別함이 있고 色塵은 알음이 없사온데, 眼識이 그 中間에서 생기는 것이온즉, 이것을 마음이 있는데라 하겠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네 마음이 만일 根과 塵의 中間에 있다면, 이 마음의 自體가 둘을 兼하였느냐, 둘을 兼하지 않았느냐? 둘을 兼하였다면 物과 自體가 雜亂할 것이며, 物은 自體의 알음알이가 아니므로 敵對가 되어 兩便으로 갈라설 것이니, 어떻게 中이 되겠느냐?

둘을 兼하지 아니 하였으면 知도 아니고 不知도 아니어서 體性이 없을 것이니, 中間이란 것이 무슨 모양이겠느냐? 그러니까 알아라, 中間에 있다는 말이 옳지 아니 하니라.』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佛께서 예전에 大目連. 須菩提. 富樓那. 舍利弗 四大弟子와 함께 法輪을 굴리실 적에 항상 말씀하시기를, [알고 分別하는 心性이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고, 中間에도 있지 아니하여, 아무데도 있는 데가 없다]고 하였나이다. 그것은 온갖 것에 執着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 한 것이오니, 제가 이제 執着함이 없는 것으로 마음이라 하오리까?』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말하기를, 알고 分別하는 心性이 아무데도 있는 데가 없다 하거니와, 이 世間과 虛空에서 물에 있고 陸地에 있고 날아 다니는 여러 가지 물건을 온갖 것이라 하나니, 네가 執着하지 않는다 함은 있다는 것이냐, 없다는 것이냐?

없다면 거북의 털, 토끼의 뿔과 같은 것이니, 무엇에 執着하지 않는다는 것이냐? 있어도 執着하지 않는다 하면 執着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형상이 없으면 아주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이 아니라면 형상이 있는 것이니, 형상이 있느면 執着하는 것이라, 어떻게 執着이 없다고 하겠느냐? 그러니까, 알아라. 온갖 것에 執着이 없는 것을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라 하는 말은 옳지 아니 하니라.』

 

2. 見이 곧 眞心이다.

 

그 때에 阿難이 大衆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공경하며 佛께 사뢰었다.

『저는 如來의 가장 어린 아우로서 佛의 사랑을 입삽고 出家하였사오나, 귀여워하심만 믿은 탓으로 많이 듣기만 하고 無漏를 얻지 못하였사오매, 娑毘迦羅呪文을 屈伏시키지 못하고 거기 홀리어서 婬室에 들어갔사오니, 참마음이 있는 데를 알지 못함이로소이다. 바라옵건데 世尊께서 큰 慈悲로 어엿비 여기사 우리에게 奢摩他 길을 보여 주시며, 저 闡提들로 하여금 彌戾車를 깨뜨리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五體를 땅에 엎드리고 大衆들과 함께 精誠을 다하여 渴仰하며 가르침을 듣자오려 하였다.

이때 世尊께서 面門으로부터 種種의 光明을 놓으시니, 그 빛이 晃耀하여 百千日과 같으며, 모든 佛世界가 六種으로 震動하고, 十方의 微塵같은 國土들이 一時에 나타났으며, 佛의 威神으로 여러 世界가 合하여 一世界가 되니 그 世界 안에 있는 여러 大菩薩이 모두 本國에 있어 合掌하고 듣잡고 있었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一切衆生이 無始以來로 種種으로 顚倒하여 業種이 自然히 惡叉聚와 같으며, 修行하는 사람들도 無上菩提를 이루지 못하고, 乃至 聲聞이나 緣覺이 되거나, 外道나 天이나 魔王이나 魔의 眷屬이 되는 것은, 다 二種의 根本을 알지 못하고 錯亂하게 修習하는 탓이니, 마치 모래를 삶아 좋은 음식을 만들려는 것이라, 비록 微塵같은 劫을 지내어도 될 수 없는 일이니라.

무엇이 二種이냐? 하나는 비롯이 없는 生死의 根本이니, 지금 너와 衆生들이 攀緣하는 마음으로 自己의 心性을 삼는 것이요, 둘은 비롯이 없는 菩提 涅槃의 원래 淸淨한 本體니, 지금 너의 識精의 원래 밝은 것이 能이 모든 緣을 내었거든, 그 緣으로 遺失하는 것이니라. 모든 衆生들이 이 본래 밝은 것을 잃어버린 탓으로, 終日토록 行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억울하게 諸趣에 들어가게 되느니라.

阿難아, 네가 지금 奢摩他의 길을 알아서 生死에서 벗어나려 하거든, 다시 물으리라.』하면서, 如來께서 金色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고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이것을 보느냐?』

阿難이 答하였다.

『보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如來께서 팔을 들고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 저의 마음과 눈에 비추임을 보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네가 무엇으로 보았느냐?』

『저와 大衆이 다 눈으로 보았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지금 대답하기를 [如來가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 네 마음과 눈에 비춘다]하나니, 네 눈은 보겠다마는, 무엇을 마음이라 하여 나의 주먹이 비추임을 받느냐?』

阿難이 말하였다.

『如來께서 지금 마음이 있는 데를 묻사오매, 제가 마음으로 推測하고 찾아보는 터이오니, 이렇게 推測하고 찾아보는 것을 마음이라 하겠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아니다, 阿難아, 그것은 네 마음이 아니니라.』

阿難이 놀라면서 자리에서 비켜서서 合掌하고 여쭈었다.

『이것이 저의 마음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하리이까?』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그것은 前塵의 虛妄한 모양의 생각이라, 너의 眞性을 疑惑케 하는 것이니, 네가 無始로부터 今生에 이르도록 盜賊을 誤認하여 아들인줄 여기고, 너의 본래 항상한 것을 잃어버린 탓으로 輪轉함을 받느니라.』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저는 佛의 사랑하는 아우로서 마음으로 佛을 사랑하여 出家하였아오니, 저의 마음이 어찌 如來만 供養하오리까. 乃至 恒河沙 같은 國土로 다니면서 여러 부처님과 善知識을 섬기오며, 大勇猛을 내어 모든 難行法事를 行함도 이 마음으로 할 것이옵고, 비록 法을 비방하고 善根에서 永遠히 물러나는 것도 亦是 이 마음으로 할 것이온데, 만일 이것이 마음이 아니라 發明하오면, 저는 마음이 없어 土木과 같을 것이오며, 이렇게 깨닫고 알고 함을 여의고는 다른 것이 없삽거늘, 어찌하여 如來께서 마음이 아니라 하시나이까? 저는 참으로 놀랍사오며, 이 大衆들도 疑惑이 없지 않사오니, 바라옵건대 大悲하신 마음으로 알지 못하는 저희들을 가르쳐 주소서.』

이때 世尊께서 阿難과 大衆에게 열어 보이어 마음이 無生法忍에 들게 하려 하사, 師子座에서 阿難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말씀하였다.

『如來가 항상 말하기를, 모든 法이 생기는 것이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一切 因果와 世界와 微塵이 마음으로 因하여 自體가 된다고 하였느니라.

阿難아, 모든 世界의 온갖 것 中에, 乃至 草葉과 縷結이라도, 그 根元을 따지면 모두 體性이 있고, 虛空까지라도 이름과 모양이 있거늘, 어찌 하물며 淸淨하고 妙淨한 밝은 마음이 一切의 마음을 性하면서 自體가 없겠느냐?

만일 네가 分別하고 覺觀하여 分明하게 아는 성품을 고집하여 마음이라 한다면, 이 마음이 마땅히 온갖 色. 香. 味. 觸의 모든 塵의 事業을 여의고도 따로 완전한 性이 있어야 하리라. 마치 네가 지금에 나의 法門을 듣는 것은, 聲塵을 因하여 分別이 있는 것이며, 비록 모든 見. 聞. 覺. 知를 滅하고, 속으로 幽閑함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法塵을 分別하는 그림자니라.

내가 네게 命令하여 마음이 아니라고 固執하라는 것은 아니다마는 네가 마음으로 자세하게 헤아려 보라. 만일 前塵을 여의고 分別하는 성품이 있으면, 그것은 참으로 너의 마음이라 하려니와, 分別하는 성품이 前塵을 여의고는 體性이 없다면 그것은 前塵을 分別하는 그림자 뿐이니라.

前塵은 常住하는 것이 아니므로 만일 變滅할 때에는 마음이 龜毛. 兎角과 같으리니, 그렇다면 너의 法身이 斷滅함과 같은 것이다. 무엇이 無生法忍을 닦아 證하겠느냐?』

그때 阿難과 大衆들이 잠자코 무엇을 잃어버린 듯 하였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世間에서 여러 修學하는 사람이 現前에 九次第定을 이루더라도, 漏가 다하지 못하고 阿羅漢을 이루는 것은, 모두 이 生死하는 妄想을 執着하여 眞實한 것인줄로 誤認하는 탓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多聞은 얻었으나 聖果를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阿難이 이 말을 듣고, 다시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 五體를 땅에 던져 長跪하여 合掌하고 佛께 사뢰었다.

『제가 佛을 따라 發心하여 出家한 뒤로부터, 佛의 威神만 믿삽고 항상 생각하기를, 제가 애써 닦지 아니하여도 如來께서 三昧를 얻게 하시리라 하였고, 몸과 마음은 본래 代身할 수 없는 줄을 알지 못하여 나의 本心을 잃었사오니, 몸은 비록 出家하였으나 마음은 道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마치 궁한 아들이 아버지를 버리고 逃亡한 듯 하나이다.

오늘에야 아무리 多聞하더라도 修行하지 못하면, 多聞하지 못함과 같아서, 飮食을 말하는 사람이 배부르지 못함과 같은 줄을 비로서 알았나이다.

世尊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二障에 얽매인 것은 寂常한 心性을 알지 못하는 탓이오니, 바라건대 如來께서 窮하고 드러난 것을 哀愍하사 妙明한 마음을 發明하여 저의 道眼을 열어 주소서.』

이때 如來께서 가슴의 卍字로부터 보배 光明을 놓으시니, 그 빛이 찬란하여 百千色이 있으며, 十方의 모든 佛世界에 一時에 두루하여, 十方世界에 계시는 여러 如來의 정수리에 대고, 다시 돌아와서 阿難과 大衆에게 대시고,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큰 法幢을 세우며, 十方의 一切衆生으로 하여금 妙하고 玄微하고 秘密한 性과 깨끗하고 밝은 마음을 얻으며 淸淨한 눈을 얻게 하리라.

阿難아, 네가 아까 내게 대답하기를 光明한 주먹을 보노라 하였으니, 이 주먹의 光明이 어떻게 있으며, 어떻게 주먹이 되었으며, 네가 무엇으로 보았느냐?』

阿難이 말하였다.

『佛의 全身이 閻浮檀金이시어, 빛나기 寶山과 같아서 淸淨하게 생겼으므로 光明이 있삽거늘, 제가 눈으로 보았사오며, 五輪指를 구부려 쥐었으므로 주먹이 되었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如來가 今日에 眞實한 말로 네게 말하노니, 智慧 있는 사람들은 譬喩로써 알게 할 수 있느니라. 阿難아, 譬喩컨대, 내 손이 없으면 내 주먹을 만들 수 없드시, 네 눈이 없으면 네 見이 成立할 수 없으리니, 너의 눈으로 내 주먹에 類例하면 그 이치가 같겠느냐?』

阿難이 말하였다.

『그러하나이다. 世尊이시여, 저의 눈이 없으면 저의 見이 成立될 수 없사오니, 저의 눈으로 如來의 주먹에 類例하면 事實과 이치가 서로 같겠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서로 같다고 말하거니와, 그 이치가 그렇지 아니 하니라. 왜냐하면, 손이 없는 사람은 주먹이 끝까지 없으려니와, 저 눈 없는 사람은 견이 아주 없지 아니 하니라. 그 까닭을 말하면 네가 시험삼아 한길에 나가서 소경들에게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면, 그 소경들이 答하기를, [내 눈에는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하리니, 이 이치로 말하면 前塵이 어두울 뿐이언정, 見이야 무슨 損傷이 있겠느냐?』

阿難이 말하였다.

『소경들이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는 것을 어떻게 見이라 하겠나이까?』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소경들의 눈이 멀어서 어두운 것만 보는 것이 저 눈 밝은 사람이 어두운 房에 있는 것과 더불어 두 깜깜함이 같겠느냐, 다르겠느냐?』

『그러하외다. 世尊이시여, 이 어두운 房에 있는 사람과 저 소경들의 두 깜깜함을 比較하면 조금도 다름이 없겠나이다.』

『阿難아, 만일 눈 먼 사람이 前塵의 깜깜한 것만 보다가, 문득 눈빛을 얻으면 前塵에서 갖가지 色을 보게 되리니, 이것을 눈이 보는 것이라 한다면, 저 어두운 房속에 있는 사람이 前塵의 깜깜한 것만 보다가, 문득 燈 빛을 얻으면 역시 前塵에서 갖가지 色을 보리니, 이것은 燈이 보는 것이라 하리라.

만일 燈이 보는 것이라면 燈이 能히 見이 있으므로 燈이라 이름하지 못할 것이요, 또 燈이 보는 것인즉 네게야 무슨 關係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燈은 能히 色을 나타낼지언정, 보는 것은 눈이요 燈이 아니며, 눈은 能히 色을 나타낼지언정, 보는성품은 마음이요 눈이 아니니라.』

 

3. 見은 動하지 않는다

 

阿難이 비록 이 말씀을 듣고, 大衆과 함께 입으로는 할 말이 없으나 마음은 아직 깨닫지 못하여, 如來께서 慈悲한 音聲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願하여, 合掌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佛의 가르치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世尊께서 兜羅綿같이 빛나고 그물모양인 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펴시고, 阿難과 大衆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처음 成道하고 鹿野園에서 阿若多等 五比丘와 너희 四衆에게 말하기를 [一切 衆生이 菩提와 阿羅漢을 이루지 못함은 客塵煩惱의 그르침이라]하였는데, 너희들이 그때에 어떻게 깨닫고 지금 聖果를 이루었느냐?』

이때 憍陳那가 일어서서 사뢰었다.

『저는 나이가 많았사온데, 이 大衆中에서 <알았다>는 이름을 얻은 것은 客塵의 두 글자를 깨닫고 聖果를 이름이로소이다. 世尊이시여, 마치 길 가는 客이 旅亭에 들려서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데, 먹거나 자는 일을 마치고는 行裝을 차려 길을 떠나는 것이요, 오래 머물지 못하거니와, 主人은 갈데가 없나이다. 이렇게 생각하오면, 머물지 않는 이는 客이요, 머무는 이는 主人이니,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客이라 하겠나이다.

또 비가 개고 볕이 나서 햇빛이 틈으로 들어오면, 虛空에 있는 細塵을 보게될 적에 塵質은 搖動하고 虛空은 고요하나이다. 이렇게 생각하오면, 맑고 고요한 것은 虛空이요, 搖動하는 것은 塵이라 하겠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그러니라.』

이때 如來께서 大衆 가운데서 五輪指를 구부렸다 펴시며, 폇다 또 구부리시고,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지금 무엇을 보았느냐?』

阿難이 대답하였다.

『如來께서 보배롭고 輪相인 손바닥을 大衆 가운데서 펴락 쥐락하심을 보았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내 손이 大衆 가운데서 펴락 쥐락 함을 보았노라 하니, 그것은 내 손이 펴락 쥐락하였느냐? 네 見이 펴락 쥐락하였느냐?』

阿難이 말하였다.

『世尊께서 大衆 가운데서 손을 펴락 쥐락하실제, 제가 如來의 손이 펴락 쥐락하심을 보았을 뿐이언정, 저의 見은 펴지거나 쥐어지거나 함이 아니옵니다.』

『어느 것이 搖動하고 어느 것이 고요하였느냐?』

『부처님 손이 가만히 있지 아니하였사옵고, 저의 見은 오히려 고요하달 것도 없삽거늘, 가만히 있지 않았달 것은 무엇이 오리까?』

佛이 말씀하였다. 『그러니라.』

이때 如來께서 손바닥으로 光明을 날려 阿難의 右쪽에 대시니, 阿難이 머리를 돌려 右쪽을 보고, 또 한 光明을 놓아 阿難의 左쪽에 대시니, 阿難은 또 머리를 돌려 左쪽을 보았다.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 머리가 지금 어찌하여 搖動하느냐?』

阿難이 대답하였다.

『如來께서 보배로운 光明을 날려 저의 左와 右에 보내옵기, 그것을 左右로 보느라고 머리가 搖動하였나이다.』

『阿難아, 네가 佛의 光明을 보느라고 머리가 左右로 搖動하였다 하니, 네 머리가 搖動하였느냐? 네 見이 搖動하였느냐?』

『世尊이시여, 제 머리가 搖動하였을 뿐이언정, 저의 見은 가만 있다 할 것도 없삽거늘, 搖動하였달 것은 무엇이오니까?』

佛이 말씀하였다. 『그러니라.』

이에 如來께서 널리 大衆에게 말씀하였다.

『만일 衆生들이 搖動하는 것을 塵이라 하고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客이라 한다면, 네가 보아라, 阿難의 머리가 搖動하였거니와, 見은 搖動하지 않았고, 나의 손이 펴락 쥐락하였거니와, 見은 펴락 쥐락함이 없지 않았느냐?

어째서 너희들이 搖動하는 것을 몸이라 하고, 搖動하는 것을 境이라 하여, 처음부터 나중까지 생각 생각마다 生하고 滅하면서 眞性은 잃어버리고 顚倒하게 일을 行하느냐? 그리하여 참 마음은 잃어버리고 물건을 내 몸인줄 잘못 아는 탓으로, 이 가운데서 輪廻하여 流轉을 스스로 取하느니라.』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第二

 

4. 見은 滅하지 않는다

 

그때 阿難과 大衆이 佛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泰然하여 가만히 생각하니, 無始以來로 本心은 잃어버리고 前塵을 分別하는 그림자만을 그릇 인정하다가 今日에 깨달으니, 마치 젖을 잃었던 아이가 慈母를 만난 것 같아서, 合掌하여 佛께 禮拜하고, 이 몸과 마음의 참되고 虛妄한 것과 헛되고 眞實한 것을 나타내어, 現前에 生滅하고 不生滅하는 두 가지 性을 發明하여 주심을 듣자오려 하였다.

이때 波斯匿王이 일어서서 佛께 사뢰었다.

『제가 前日, 佛의 가르침을 받잡기 前에 迦旃延과 毘羅胝子를 만났사온데, 다 말하기를 [이 몸이 죽은 뒤에 斷滅하는 것을 涅槃이라 한다]고 하더이다. 이제 佛을 만났사오나, 아직도 疑惑이 없지 못하오니, 어떻게 發明하오면 이 마음의 生滅하지 않는 境地를 證하여 아오리까? 지금 이 大衆들로서 漏가 있는 이들은 모두 듣잡고자 하나이다.』

佛이 大王에게 말씀하였다.

『당신의 몸이 現在하기에 지금 묻거니와, 당신의 肉身이 金剛과 같아서 항상 머물러 있고 죽지 않으리라 하는가? 또는 變하여 없어지리라 하는가?』

『世尊이시여, 이 肉身은 마침내 滅할 것이니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大王이 일찍 滅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滅할 줄을 아는가?』

『世尊이시여, 이 無常하게 變하는 제 몸이 비록 滅한 적은 없사오나, 現前에 念念히 變遷하고 새록새록 달라지는 것이, 마치 불이 스러져 재가 되듯이 점점 늙어지나이다. 이렇게 쉴새 없이 늙어지므로 이 몸이 決定코 滅할 줄을 아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그러니라. 大王의 나이는 지금 老衰하였거니와, 얼굴은 아이적과 어떠한가?』

『世尊이시여, 제가 어렸을 적에는 皮膚가 潤澤하였사오며, 점점 長成하여서는 血氣가 充實하옵더니, 지금 늙어빠져 衰盡하였사오매, 形容은 惟悴하고 精神이 昏昧하며, 머리털은 白髮이 되고 낯은 쭈그러져 앞 날이 멀지 않았사온데, 어떻게 젊었을 때와 比較할 수 있사오리까?』

佛이 말씀하였다.

『大王의 얼굴이 갑자기 늙지는 아니 하였으리라.』

王이 말하였다.

『世尊이시여, 密密히 變化하는 것을 제가 깨닫지는 못하오나 歲月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이렇게 늙었나이다. 그 까닭을 말하오면, 제 나이 二十살 적에는 젊었다고는 하나, 十歲적 보다는 늙었고, 三十歲 때는 二十歲보다 늙었으며, 지금은 六十二歲이온데 五十歲적을 생각하오면 매우 健强하였나이다.

世尊이시여, 密密히 變遷하는 것이 이렇게 엄청나게 늙었사온데, 그동안 變易한 것을 十年씩 잡아 말하였거니와, 만일 자세하게 생각하오면, 그 變遷하는 것이 어찌 十年 二十年 뿐이오리까, 實은 해마다 變하였으며, 어찌 해마다 뿐이오리까, 亦是 달마다 變하였으며, 어찌 달마다 뿐이오리까, 실상은 날마다 變하였사오니, 곰곰 생각하오면 一刹那동안도 停住하지 아니하오매, 이몸이 畢竟에 變滅할 줄을 아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大王이여, 당신이 變滅하여 停住하지 아니함을 보고, 畢竟에 滅할 줄을 아노라 하였거니와, 그 滅할 때에, 그대의 몸 가운데 不滅하는 것이 있는 줄을 아는가?』

波斯匿王이 合掌하고 사뢰었다.

『그것을 참으로 알지 못하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不生滅하는 性을 보여주리라. 大王의 나이 몇살 적에 恒河水를 보았는가?』

『제가 난지 세살 적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耆婆天祠에 가서 뵈올 적에 恒河를 건너게 되어, 그때에 恒河水인줄 알았나이다.』

『大王이여, 그대의 말대로 二十時節이 十歲적보다 늙었고, 지금 六十이 넘도록 날로 달로 해로 때로 고대고대 變遷하였다 하거니와 세살 적에 이 물을 보던 것과, 十三歲 적에 보던 것은 그 물이 어떠한가?』

『새살 적과 꼭 같아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사오며, 지금 六十二歲지마는 역시 다름이 없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그대가 지금 머리가 세고 낯이 쭈부러짐을 서러워 하나니, 낯은 어렸을 적보다 쭈구러 졌으려니와, 지금에 恒河水를 보는 것도 어려서 恒河를 보던 것보다 늙어졌는가?』

『그렇지 않나이다. 世尊이시여.』

『大王의 낯은 쭈구러 졌을망정, 보는 정기는 性質이 쭈구러지는 것이 아니니라. 쭈구러지는 것은 變하려니와, 쭈구러지지 않는 것은 變하는 것이 아니며, 變하는 것은 滅하려니와, 變하지 않는 것은 元來 生滅이 없는 것이니, 어찌 그 가운데서 너의 生死를 받으리라 하여 末伽黎들이 말하는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아주 滅한다는 말을 되풀이 하느냐?』

王이 이 말을 듣고는 몸이 죽은 뒤에도 이 生을 버리고 다른 生에 태어날 줄을 알고, 여러 大衆과 함께 뛰놀며 歡喜하여 未曾有를 얻었느니라.

 

5. 見은 遺失하지 않는다

 

阿難이 자리에서 일어나 佛께 禮拜하고 合掌하고 꿇어 앉아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만일 이 보고 듣는 일이 반드시 生滅하지 않사오면 世尊께서 어찌하여 저희들더러 眞性을 잃어버리고 顚倒하게 일을 行한다 하시었나이까? 願컨대 慈悲하신 마음으로 우리의 塵垢를 씻어 주소서.』

如來께서 卽時에 金色 팔을 세우사 손을 아래로 내리우시고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지금 나의 母陀羅 손을 보라. 바로냐, 거꾸로냐?』

阿難이 사뢰었다.

『世間 사람들은 이것을 거꾸로라 하거니와, 저는 바론지 거꾸론지 알지 못하나이다.』

『阿難아, 世間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라 한다면, 世間 사람들이 어떤 것을 바로라 하겠느냐?』

『如來께서 팔을 세우사 兜羅綿 같은 손이 위로 虛空을 가리키면 바로라 하겠나이다.』

佛이 곧 팔을 세우시고 말씀하였다.

『阿難아, 이렇게 顚倒하는 것은 首와 尾가 서로 바뀌었을 뿐이어늘, 世間 사람들이 一하고 倍하게 瞻視함이니라.

그러니까 네 몸과 如來의 淸淨한 法身과를 比類하여 發明하면, 如來의 몸을 正徧知라 하고, 너희들의 몸은 性顚倒라 하느니라. 네가 마음대로 살펴보라. 네 몸과 佛의 몸에서 顚倒하다는 것은 어디를 이름하여 顚倒하다 하느냐?』

이에 阿難과 大衆이 눈을 부릅뜨고 佛을 보면서 눈을 깜박거리지 아니하나, 몸과 마음이 顚倒한 데를 알지 못하였다.

佛이 慈悲하신 마음으로 阿難과 大衆을 哀愍히 여기사 海潮音으로 널리 會衆에게 말씀하였다.

『善男子들아, 내가 항상 말하기를 [色과 心과 諸緣과 心의 所使와 여러 所緣의 法들이 오직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너의 몸과 마음이 모두 妙明眞精한 妙心으로 나타난 것이어늘 너희들이 어찌하여 本來 妙하고 圓妙한 밝은 마음과, 寶明한 妙性을 遺失하고 悟中의 迷를 誤認하느냐?

晦昧하여 空이 되었거든, 空과 晦暗한 中에서 暗이 맺히어 色이 되며, 色이 妄想과 섞이어 想과 相을 몸이라 하고, 緣을 쌓아서 안에서 흔들리며, 밖으로 나아가 奔逸하는 昏擾擾한 相을 心性이라 하느니라.

한번 迷하여 心이라 하고는 決定코 惑하여 色身안에 있다 하고, 이 色身과 밖에 있는 山과 河와 虛空과 大地가 모두 妙明한 眞心中의 物인줄을 알지 못하나니, 비유컨대 澄淸한 百千大海는 버리고, 한 淨漚만을 認하여 潮水의 全體라 하면서, 瀛과 渤을 窮盡하였다는 것과 같으므로, 너희들은 곧 迷한 中에서 倍하는 사람이라, 내가 손을 드리운 것과 差別이 없나니, 如來가 너를 말하여 憐愍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6. 見은 돌려 보낼 수 없다

 

阿難이 佛의 慈悲로 救하고 깊이 가르침을 받잡고, 눈물 흘리며 叉手하고 佛께 사뢰었다.

『제가 佛의 이러하게 妙한 音聲을 듣잡고, 妙明한 마음의 元來 圓滿하고 常住하는 心地를 깨달았사오나, 제가 現前에 佛의 說法하는 음성을 깨닫는 것도 이 緣心으로 瞻仰하는 바인지라, 한갓 이 마음(妙明心)을 얻었사오나, 敢히 本元의 心地라고 認定하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哀愍하시는 마음으로 圓音을 宣示하사, 疑根을 뽑아버리고 無上道에 돌아가게 하옵소서.』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너희들이 오히려 緣心으로 法을 들으므로 이 法도 또한 緣이라, 法의 性을 把握하지 못하였나니,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저 사람에게 보이거든, 저 사람이 손가락을 因하여 달을 보아야할 것이어늘, 만일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 한다면, 그 사람은 어찌 달만 잃은 것이리요, 손가락까지 잃은 것이다. 왜냐하면,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밝은 달이라 하는 까닭이니라. 어찌 손가락만 잃었을 뿐이리요, 밝은 것과 어두운 것도 모른다 하리니, 왜냐하면,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달의 밝은 성품이라 하는 탓이니,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모두 모르는 연고니, 너도 그와 같느니라.

만일 나의 說法하는 音聲을 分別하는 것으로 너의 마음이라 한다면, 그 마음이 마땅히 分別할 音聲을 여의고도 分別하는 성품이 있어야 하리라. 마치 어떤 客이 旅亭에 寄宿할 적에 잠깐 있다가는 문득 가는 것이요, 마침내 常住하지 않거니와, 旅亭主人은 갈 데가 없으므로 主人이라 하나니, 이것도 그와 같아서 참으로 너의 마음이라면 갈데가 없어야 할 것이어늘, 어찌하여 音聲을 여의고는 分別하는 성품이 없느냐?

이것은 어찌 音聲을 分別하는 마음 뿐이리요, 내 얼굴을 分別하는 것도 色相을 여의고는 分別하는 성품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乃至 分別이 온통 없어서 色도 아니고 空도 아니므로, 拘舍離들이 아득하여 冥諦라 하느니라.

만일 法塵의 緣을 여의고는 分別하는 성품이 없다면, 너의 心性이 각각 돌려보낼 데가 있거니, 어떻게 主人이라 하겠느냐?』

阿難이 말하였다.

『만일 저의 心性이 各各 돌려보낼 데가 있다 하오면, 如來께서 말씀하시는 妙明한 元心은 어찌하여 돌려보낼 데가 없나이까? 바라옵건대 哀愍하시어 저에게 말씀하여 주소서.』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나를 볼 적에, 見의 精明한 本元이 비록 妙하고 精明한 心性은 아니나, 第二月과 같은 것이고, 月影이 아니니라. 네가 자세히 들으라, 이제 너에게 돌려보낼 데 없음을 보여주리라.

阿難아, 이 大講堂이 東方이 환히 열리어 해가 하늘에 뜨면 밝게 비취고, 中夜인 黑月에 雲霧가 자욱하면 다시 어둡고, 戶牖의 틈으로는 通함을 보고, 牆宇에서는 막힘을 보고, 分別한 곳에서는 緣을 보고 頑虛한 中에는 모두 空性이요, 울발의 象은 昏塵이 얽힌 것이요, 맑게 개어 우내가 걷히면 淸明함을 보게 되느니라.

阿難아, 네가 이 여러 가지 變化하는 相을 보거니와, 내가 이제 본래의 因한 곳에 돌려 보내리라. 무엇이 본래의 因한 곳이냐? 阿難아, 이 여러 가지 變化에서 밝은 것은 해에 돌려 보낸다. 왜냐하면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니, 밝은 因은 해에 있다. 그러므로 해에 돌려 보낸다. 어두움은 黑月에 돌려 보내고, 通함은 戶牖에 돌려 보내고, 막힘은 牆宇에 돌려 보내고, 緣은 分別에 돌려 보내고, 頑虛는 空에 돌려 보내고, 울발은 昏塵에 돌려 보내고, 淸明은 개인데 돌려 보낸다. 모든 世間의 一切의 것이 이런 種類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네가 이 여덟가지를 보는 見의 淸明한 性은 어디로 돌려 보내겠느냐? 무슨 까닭이냐? 만일 밝은 데로 돌려 보낸다면, 밝지 아니할 적에는 어두움을 보지 못해야 하리라. 비록 밝은 것, 어두운 것이 여러 가지로 差別하나 見은 差別이 없느니라. 여러 가지 돌려 보낼 수 있는 것은 저절로 네가 아니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못할 것은 네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네 마음이 본래 妙하고 밝고 깨끗하건마는 네가 스스로 昏迷하고 답답하여 본래 妙한 것을 잃어버리고 輪廻하면서, 生死 속에서 항상 漂溺하나니, 그러므로 如來가 너를 可憐하다고 하느니라.』

 

7. 見은 混亂하지 않는다

 

阿難이 말하였다.

『제가 비록 見의 성품이 돌려 보낼 수 없는 줄은 알겠아오나, 그것이 저의 眞性인 줄이야 어떻게 아오리까?』

佛이 말씀하였다.

『阿難아, 내가 너에게 묻노라. 네가 無漏한 淸淨은 얻지 못하였으나, 佛의 神力을 받들어 初禪天을 보는데 障碍가 없었고 阿那律은 閻浮提를 보되 掌中의 菴摩羅 열매 같이하고, 菩薩들은 百千世界를 보고, 十方의 如來는 微塵같은 淸淨한 國土를 통털어 보지 못하는데가 없거니와, 衆生의 보는 것은 分寸에 지나지 못하느니라.

阿難아, 내가 너로 더불어 四王天의 住居하는 宮殿을 볼 적에 中間에서 물과 陸地와 虛空에 있는 것들을 모두 보았나니, 비록 어둡고 밝은 種種形像들이 있었으나, 모두 前塵의 留碍를 分別하는 것이니라. 네가 여기에서 自와 他를 分別하라.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이 見中에서 어느 것은 나의 軆요, 어느 것은 物象인 것을 擇하리라.

阿難아, 너의 見하는 根源을 끝까지 다하라. 日月宮까지도 모두 物相이라, 너의 見이 아니며, 七金山에 이르도록 두루 觀察하여도 비록 갖가지 빛이나 역시 物相이요, 너의 見이 아니며, 점점 보더라도 구름이 뜨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티끌이 날리는 것이나, 樹木과 山川과 草芥와 사람과 畜生이 모두 物相이요, 너의 見이 아니니라.

阿難아, 이 가깝고 먼데 있는 모든 物性이 비록 差別하나, 다 같이 너의 淸淨한 見精으로 보는 것이니, 여러 種類가 스스로 差別이 있을지언정, 見하는 性은 다르지 아니하나니, 이 見精의 妙明한 것이 진실로 너의 見하는 性이니라.

만일 見이 物相이라면 네가 나의 見을 보아야 하리라.

만일 함께 보는 것으로 나의 見을 보노라 한다면, 내가 不見할 때에는 어찌하여 나의 不見하는 곳을 보지 못하느냐?

만일 不見하는 곳을 본다면 自然히 저 不見하는 相이 아니니라.

만일 나의 不見하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自然히 物相이 아니어늘 어찌 네가 아니겠느냐?

또 네가 지금 物을 볼 적에, 네가 이미 物을 보거든, 物도 또한 너를 보리니, 그렇다면 體性이 紛雜하여 너와 나와 모든 世間들이 安立하지 못하리라.

阿難아, 만일 네가 볼 적에 이것이 너의 見이고, 나의 見이 아니라면, 見의 性이 周徧하였나니, 네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어찌하여 너의 眞性이 너에게 性하기를 참되지 못하였으리라 疑心하여, 나에게 물어 實을 求하려 하느냐?』

 

8. 見은 無礙하다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만일 이 見의 性이 반드시 나요, 다른 것이 아니오면, 제가 佛과 함께 四天王의 勝藏寶殿을 보느라고 日月宮에 있을 적에는, 이 見이 周圓하여 娑婆國에 두루하다가, 精舍에 돌아와서는 伽藍만 보이고, 방안에서 마음을 맑힐 적에는 簷廡만 보이나이다.

世尊이시여, 이 見이 이와 같아서 그 體가 本來는 한 世界에 가득하던 것이, 지금 방안에 있을 적에는 한 방에만 가득하오니, 이 見이 큰 것을 縮少하여 작아진 것이오니까, 담과 지붕이 새를 막아서 끊어진 것이오니까? 제가 이 이치의 어찌된 까닭을 알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큰 慈悲로 저에게 일러주소서.』

佛이 말씀하였다.

『阿難아, 一切世間이 크고 작고 안이고 밖인 모든 일이 各各 前塵에 屬한 것이니, 見이 늘고 준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비유하면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空을 보는 것 같으니라. 다시 네게 묻노니, 이 모난 그릇 속에서 보는 모난 空이 一定하게 모난 것이냐, 一定하게 모난 것이 아니냐? 만일 一定하게 모난 空이라면 따로 둥근 그릇에 담아도 空이 둥글지 않아야 할 것이요, 만일 一定하게 모난 것이 아니라면 모난 그릇 속에서도 모난 空이 없어야 하리라. 네가 말하는 [이 이치의 어찌된 까닭을 알지 못한다]는 그 이치가 이런 것이니, 어떻게 따질 수 있겠느냐?

阿難아, 만일 모나고 둥근 것이 없는데 到達하고자 하면, 모난 그릇만 除할지언정, 空의 自體는 모난 것이 없나니, 空의 모난 것을 除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만일 네가 묻는 것 같아, 방에 들어갔을 적에 見을 縮小하여 작게하였다면, 해를 쳐다볼 적에는 見을 느리어 해에 닿게한 것이겠느냐? 담과 지붕이 새를 막아서 見이 끊어졌다면, 작은 구멍을 뚫었을 적에는 어째서 이은 매듭이 없느냐? 그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一切衆生이 無始以來로 自己를 迷하여 物이라 하며, 本心을 잃어버리고 物의 所轉이 되었으므로, 이 中에서 大를 볼고 小를 보거니와, 만일 能히 物을 轉하면, 如來와 같이 몸과 마음이 圓明하여서 道場에서 動하지 않고 一毛端에 十方의 國土를 두루 含受하게 되리라.』

 

9. 見은 나눌 수 없다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만일 이 見精이 반드시 나의 妙性이라면, 이 妙性이 지금 내 앞에 現在하옵니다. 이 見이 반드시 나의 眞性이라면 이 몸과 마음은 何物이오니까? 지금 이 몸과 마음은 分別하는 實際가 있으나, 저 見은 別로 내 몸을 分辨함이 없나이다.

만일 저것이 참으로 내 마음이어서 나로 하여금 보게한다면, 見性이 참으로 나요, 이 몸은 내가 아닐 터이오니, 如來께서 먼저 말씀하신 [物이 能히 나를 보리라]던 것과 어떻게 다르오리까? 바라건대 큰 慈悲로 우리의 모르는 것을 깨우쳐주소서.』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말하기를 [見이 네 앞에 現在한다]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만일 참으로 네 앞에 있어서 네가 본다면, 이 見精이 있는 處所가 있을 터이니,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또 지금 너와 함께 祇陀林에 앉아서 숲과 냇물과 殿堂을 보며, 위로는 日月을 보고 앞으로는 恒河를 對하였으니, 네가 지금 내 師子座 앞에서 손으로 分明히 가리켜 보라. 이 여러 가지 相이 그늘진 것은 숲이요, 밝은 것은 해요, 막힌 것은 壁이요. 通한 것은 虛空이니, 이와 같이 草木과 실오리까지가 크고 작은 것은 다르나, 形相이 있는 것은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느니라. 그 見이 반드시 네 앞에 있다면, 네가 손으로 확실하게 가리키라. 어느 것이 見이냐?

阿難아, 마땅히 알아라. 만일 空이 見이라면 이미 見이 되었으니, 어느 것이 空이냐? 만일 物이 見이라면 이미 見이 되었으니, 어느 것이 物이냐? 너는 이 萬象中에서 微細하게 分析하여 精明하고 淨妙한 見을 쪼개내서 내게 보이되, 저 物象과 같이 分明하여 疑心이 없게하라.』

阿難이 말하였다.

『제가 지금 이 重閣講堂에서 멀리는 恒河에 이르고 위로는 日月을 보거니와, 손으로 가리키고 눈으로 보는 것이 모두 物象이요, 見이라 할 것이 없나이다. 世尊이시여, 佛의 말씀과 같사오니, 저는 아직 漏가 있는 初學聲聞이옵거니와, 乃至 菩薩이라도 이 萬物象中에서 精見을 分析하여 내되, 一切物을 여의고 따로 自性이 있게하지 못하리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그러니라.』 佛이 또 말씀하였다.

『阿難아, 네 말대로 見精이 一切物을 여의고는 따로 自性이 없다면 네가 가리키는 이 物象中에는 見이라 할 것이 없어야 하리라. 지금 다시 말하노라. 네가 如來와 함께 祇陀林에 앉아서 숲과 동산과 乃至 日月을 보는데, 여러 가지 物象이 다르지마는, 반드시 네가 가리킬 見精이 없다면, 네가 다시 發明하라. 이 物象中에서 어느 것이 見이 아니냐?』

阿難이 말하였다.

『제가 이 祇陀林을 두루 보오나, 이 가운데서 어느 것이 見이 아닌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왜냐하면, 나무가 見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보며, 나무가 곧 見이라면 어느 것이 나무오리까? 이와 같이, 乃至 空이 見이 아니라면 어떻게 空을 보며, 空이 곧 見이라면 어느 것이 空이오리까? 제가 또 생각하오니 萬物象中에서 微細하게 發明하건대 見이 아닌 것이 없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그러니라.』

이에 大衆中에서 無學이 아닌 이들이 이 佛의 말씀을 듣고, 茫然하게 이 이치의 始終을 알지 못하여 한참동안 惶悚하여 마치 가졌던 것을 잃어버린 듯 하였다.

如來께서 그들의 魂慮가 變慴함을 아시고, 憐愍한 마음을 내어 阿難과 大衆을 慰安하였다.

『善男子들아, 無上法王은 眞實하게 말하며, 如와 같이 말하며, 誑誕하지도 않고 虛妄하지도 아니하여, 末伽黎들이 죽지 않으려고 하는 네 가지 矯亂하는 論議는 아니니, 너희들은 잘 생각하여 부질없이 哀慕하지 말라.』

이 때에 文殊師利法王子가 四衆을 哀愍하여, 大衆中에서 일어나 佛의 발에 頂禮하고 合掌하며 恭敬하여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이 大衆들이 如來께서 發明하신 精見과 色과 空이, 是인지 非是인지 두가지 이치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世尊이시여, 이 前緣이 色象과 空象이 만일 見이라면 가리킬 수가 있어야 하고, 만일 見이 아니라면 보지 못해야 할 것이 온데, 지금 이 이치의 歸屬할 바를 알지 못하여 驚怖함일지언정, 옛날의 善根이 輕尠한 것은 아니오니, 바라건대 如來께서 大慈로 發明하소서. 이 物象들과 見精이 元來 무엇이길래 이 中間에 是와 非是가 없나이까?』

佛이 文殊와 大衆에게 말씀하였다.

『十方의 如來와 大菩薩들이 스스로 住하는 三摩地에서는 見과, 見의 緣과, 생각하는 相이 虛空華와 같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이 見과 緣이 元來 菩提 의 妙淨明한 本體이니, 어찌 그 가운데 是와 是非가 있겠느냐? 文殊야, 내가 이제 네게 묻노니, 네가 文殊인데, 다시 是文殊라 할 文殊가 있겠느냐, 文殊가 없겠느냐?』

『그러하오이다. 世尊이시여, 제가 참말 文殊이오매, 是文殊가 없나이다. 왜냐하면 是文殊가 있다면 두 文殊가 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文殊가 없는 것 아니오니, 이 가운데 是라 非라 할 두 가지가 없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이 妙明한 見과 모든 空과 塵도 역시 그러하여, 本來 妙明한 無上菩提의 깨끗하고 圓滿한 眞心으로서, 虛妄하게 色과 空과 聞과 見이 되었으니, 마치 第二月과 같거늘, 어느 것은 是月이라 하고 어느 것은 非月이라 하겠느냐?

文殊야, 一月만이 참된 것이매, 그 中間에 是月과 非月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에 見과 塵을 보고서, 種種으로 發明하는 것을 妄想이라 하나니, 能히 그 가운데서 是와 非是를 超出하지 못하거니와, 이 眞精한 妙覺의 밝은 性을 말미암으면, 너로 하여금 指와 非指에서 能히 超出케 하리라.』

 

10. 見은 情量을 超越하였다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法王의 말씀과 같이, 覺과 緣이 十方世界에 두루하며 湛然히 常住하여 性이 生滅이 아니라 하오면, 예전 梵志인 娑毘迦羅가 말하는 [冥諦]나, 投灰外道들이 말하는 [眞我가 十方에 徧滿하다]는 것과 어떻게 다르오리까?

世尊께서도 楞伽山에서 大慧菩薩 等에게 이 이치를 말씀하실 적에 [저 外道들은 自然이라 말하거니와, 내가 말하는 因緣은 저들의 境界가 아니라] 하셨나이다.

제가 지금 보건대 覺의 性이 自然한 것이이서, 生도 아니고 滅도 아니라, 一切 虛妄과 顚倒를 여의어서 因緣이 아닌 듯 하오니, 저들의 自然과 더불어 어떻게 開示하여야, 邪見에 빠지지 아니하고 眞實한 마음의 妙覺明한 性을 얻겠나이까?』

佛이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그렇게 方便을 내어서 眞實하게 말하였는데, 네가 오히려 깨닫지 못하고 自然인가 疑惑하느냐?

阿難아, 만일 自然이라면, 自라는 것이 分明하여, 自然의 體가 있어야 하리라.

네가 보라. 이 妙明한 見에서 무엇을 自라 하겠느냐? 이 見이 明으로써 自라 하느냐, 暗으로써 自라 하느냐, 空으로써 自라 하느냐, 塞으로써 自라 하느냐?

阿難아, 만일 明으로써 自라 한다면 暗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요, 空으로써 自라 한다면, 塞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乃至 暗等으로써 自라 한다면, 明할 때에는 見性이 斷滅할 것이니, 어떻게 明을 보겠는냐?』

阿難이 말하였다.

『이 妙한 見의 性이 自然이 아니라면, 제가 이제 因緣으로 생긴것이라 發明하려 하오나, 마음에 오히려 分明하지 못하여 如來께 묻삽노니, 이 이치가 어찌 하오면 因緣에 合하오리까?』

佛이 말씀하였다.

『네가 因緣이라 하니, 네게 다시 물으리라. 네가 지금 봄을 因하여 見의 性이 앞에 나타나나니, 이 見이 明을 因하여 봄이 있느냐, 暗을 因하여 봄이 있느냐, 空을 因하여 봄이 있느냐, 塞을 因하여 봄이 있느냐?

阿難아, 만일 明을 因하여 봄이 있다면, 暗은 보지 못해야 하고 暗을 因하여 봄이 있다면, 明은 보지 못해야 하며, 이와 같이 空을 因하며 塞을 因함도 明과 暗과 같느니라.

또 阿難아, 이 見이 明을 緣하여 봄이 있느냐, 暗을 緣하여 봄이 있느냐, 空을 緣하여 봄이 있느냐, 塞을 緣하여 봄이 있느냐?

阿難아, 만일 空을 緣하여 있다면, 塞은 보지 못해야 하고, 塞을 緣하여 있다면, 空은 보지 못해야 하며, 이와 같이 明을 緣하고 暗을 緣함도 空과 塞과 같느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이 精한 覺의 妙明한 것은 因도 아니고, 緣도 아니고, 自然도 아니고, 不自然도 아니니, 非와 不非도 없고, 是와 非是도 없어서, 一切의 相을 여의고, 一切의 法에 卽하였거늘, 네가 어떻게 그 가운데 마음을 내어, 世間의 戱論과 名相으로 分別하려 하느냐? 마치 손바닥으로 虛空을 만지려는 것 같아서 자못 애만 쓸지언정, 虛空이 어찌하여 네게 잡히겠느냐?』

 

11. 見은 見을 離하였다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이 妙한 覺의 性이 因도 아니고 緣도 아니라면 世尊께서 比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는 性이 네가지 緣을 갖추어야 하나니, 이른바 空을 因하고 明을 因하고 心을 因하고 眼을 因한다]하였나이다. 그 뜻은 어떠하오니까?』

佛이 말씀하였다.

『阿難아, 내가 世間의 모든 因緣相을 말한 것이고, 第一義를 말함이 아니니라.

阿難아, 내가 또 네게 묻노라. 世間 사람들이 [내가 보노라]하나니, 어떤 것을 본다 하고,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 하느냐?』

阿難이 말하였다.

『世間 사람들이 해나 달이나 燈의 光明을 因하여 갖가지 相을 보는 것을 본다 하고, 이 세가지 光明이 없으면 보지 못한다 하나이다.』

『阿難아, 만일 明이 없을 적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暗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일 暗을 본다면, 그것은 明일 없을 뿐이어늘, 어찌하여 봄이 없다 하겠느냐?

阿難아, 만일 暗할 때에, 明을 보지 못하므로 못본다 한다면 明할 때에, 暗을 보지 못하는 것도 못본다 할 것이니, 그렇다면 두 相을 모두 못 본다고 해야 할 것이니라.

만일 두 相이 서로 凌奪함일지언정, 너의 見性은 그 中에서 잠깐도 없는 것이 아니니, 그렇다면 둘을 모두 본다고 할 것이라 어찌 못본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阿難아, 마땅히 알아라. 明을 볼 적에도, 보는 것은 明이 아니고, 暗을 볼적에도 보는 것은 暗이 아니고, 空을 볼적에도 보는 것은 空이 아니고, 塞을 볼적에도, 보는 것은 塞이 아니니라.

네가지 이치가 成就되었으니, 네가 다시 알아라. 見을 볼적에 보는 것은 見이 아니니라.

보는 것은, 見을 여의어서 見으로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늘, 어찌 다시 因緣이라 自然이라 和合相이라 말하겠느냐? 너희 聲聞들이 용렬하고 知識이 없어, 淸淨한 實相을 通達하지 못하기에 내가 다시 네게 말하노니, 잘 생각하여 妙한 菩提의 길에서 고달파하지 말라.』

 

12. 妄에서 眞을 보이다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佛世尊께서 저희들에게 因緣과 自然과 和合과 不和合을 演說하시오나, 마음이 열리지 못하였삽더니, 이제 다시 [見을 보는 것은 見이 아니라]함을 듣삽고 더욱 답답하오니, 바라옵건데 큰 慈悲로 大慧目을 베푸시어, 우리에게 열어 보이사 覺心이 明淨케 하옵소서.』

이 말을 마치고 슬피 울며 頂禮하고 聖旨를 받자오려 하였다.

이때 世尊께서 阿難과 大衆을 憐愍하사 큰 陀羅尼와 모든 三摩提의 妙하게 修行하는 길을 敷演하시려고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비록 억세게 記憶하나, 多聞에만 利益하고 奢摩他의 微密한 觀照에는 마음에 오히려 分明하게 알지 못하는구나! 너는 자세히 들으라. 내 이제 너를 爲하여 分別하여 보이며, 將來에 漏가 있는 이들로 菩提果를 얻게 하리라.

阿難아, 一切衆生이 世間에 輪廻함은 두 가지 顚倒하게 分別하는 妄見으로 말미암아 當處에서 發生하여 當業으로 輪轉하느니라.

무엇을 두가지 妄見이라 하느냐? 一은 衆生의 別業妄見이요, 二는 衆生의 同分妄見이니라.

어떤 것을 別業妄見이라 하느냐? 阿難아, 世間 사람들이 눈에 赤眚이 있으면, 밤에 등불을 볼적에 特別히 五色이 重疊한 圓影이 있나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날밤 燈에 나타나는 圓光은 燈의 빛이냐, 見의 빛이냐?

阿難아, 만일 燈의 빛이라면, 赤眚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보지 못하고, 이 圓影을 眚病 난 사람만이 보느냐? 만일 見의 色이라면, 見이 이미 色이 되었으니, 저 眚病난 사람이 圓影을 보는 것은 무엇이라 하겠느냐?

또 阿難아, 이 圓影이 燈을 여의고 따로 있다면, 곁으로 屛. 帳. 几. 筵을 볼적에도 圓影이 있어야 할 것이요, 見을 여의고 따로 있다면, 눈으로 볼 것이 아니니, 어째서 眚病난 사람이 눈으로 圓影을 보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色은 實로 燈에 있건만은, 見의 病으로 圓影이 되었느니라. 圓影과 見이 다 眚病이거니와, 眚을 보는 것은 病이 아니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것이 燈탓이라, 見탓이라 하거나, 그中에서 燈탓이 아니다 見탓이 아니다]할 것이 아니니라.

마치 第二月이 自體도 아니고, 影像도 아닌 것과 같나니, 무슨 까닭이냐. 第二月을 보는 것은 눈을 눌러서 생긴 것이므로 智慧가 있는 이는 이 눈을 눌러서 생긴 것이 月形이다, 月形이 아니다. 見을 여의었다, 非見을 여의었다고 말하지 아니 하리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의 赤眚으로 된 것이니, 무엇을 이름하여 燈탓이라, 見탓이라 하며, 하물며 燈탓이 아니다, 見탓이 아니라고 分別함이겠느냐?

어떤 것을 同分妄見이라 하느냐? 阿難아, 이 閻浮提에서 大海水를 除하고, 中間에 있는 陸地에 三千洲가 있는데, 복판의 大洲를 東西로 總括하면, 大國이 二千三百이요, 다른 小洲들이 海中에 있는데 그 섬들에는 二三百國이 있기도 하고, 或 一國 二國도 있고, 三十國. 四十國. 五十國이 있기도 하니라.

阿難아, 이 가운데 가장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거든, 한 나라 사람들은 惡緣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작은 섬에 있는 그 나라 衆生들은 不祥한 境界를 보는데 두 해를 보기도 하고, 두 달을 보기도 하고 乃至 햇무리. 月蝕. 日蝕. 해의 귀걸이. 彗星. 孛星. 飛星. 流星. 등무지개. 곁무지개. 虹. 蜺의 갖가지 나쁜 것을 이 나라 사람들만이 보고, 저 나라 衆生들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느니라.

阿難아, 내가 이제 이 두 가지로써, 進하고 退하면서 例를 들어 말하리라.

阿難아, 저 衆生의 別業妄見으로 燈불에 나타나는 圓影을 보는것이 비록 前境인 듯 하나, 그 보는 이의 眚病으로 되는 것이니, 眚은 見이 疲勞한 것이요, 色으로 된 것이 아니거니와, 眚病임을 보는 것은 마침내 見의 허물이 없느니라.

네가 지금 눈으로 山河와 國土와 衆生을 보는 일에 類例하면 모두 다 無始以來의 見의 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見과 見의 緣이 前境인 듯이 나타내거니와 元來 나의 覺明으로 所緣을 보는 眚이니, 覺으로 보는 것은 眚이나, 本覺의 밝은 마음으로 緣을 깨닫는 것은 眚이 아니니라.

所覺을 覺하는 것은 眚이나, 覺은 眚中의 것이 아니니라. 이는 實로 見을 보는 것이어늘, 어찌하여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모든 世間과 十類衆生을 보는 것이 다 見의 眚이요, 眚을 보는 것이 아니니, 저 見의 眞精한 性은 眚이 아니므로 見이라 하지 아니하느니라.

阿難아, 저 衆生의 同分妄見으로써, 그 別業妄見의 一人에 類例하면, 眚病난 사람은 저 一國과 같고, 그가 보는 圓影이 眚病으로 생긴 것이나, 저 同分妄見으로 보는 不祥한 境界가, 다 같은 見業中의 瘴惡으로 생기는 것이니, 모두 다 無始以來의 妄見으로 생기는 것이니라.

閻浮提의 三千洲와 四大海와 娑婆世界와 十方의 有漏國과 모든 衆生들에게 例하건대, 모두 다 覺明의 無漏한 妙心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虛妄한 病의 緣으로 和合하여 虛妄하게 나고 和合하여 虛妄하게 죽느니라.

만일 和合하는 緣과 不和合을 멀리 여의면, 곧 生死의 因을 없애버리고, 菩提의 不生滅하는 性을 圓滿하여, 淸淨한 本心의 本覺이 常住하리라.

阿難아, 네가 비록 本覺의 妙明한 性이 因緣도 아니며 自然도 아닌 줄을 깨달았으나, 오히려 이 覺의 元이 和合으로 난 것도 아니고 不和合으로 난 것도 아님을 알지 못하는구나.

阿難아, 내가 다시 前塵으로써 네게 물으리라. 네가 지금도 一切世間의 妄想으로 和合하는 因緣을 스스로 疑惑하여 菩提를 證하는 마음도 和合으로 생긴다 하는구나!

너의 지금 妙淨한 見精이 明과 和하였느냐, 暗과 和하였느냐, 通과 和하였느냐, 塞과 和하였느냐?

만일 明과 和하였다면 네가 明을 볼 적에 明이 앞에 나타나나니, 어느 곳에 見이 섞이었느냐? 보는바 相은 分辨할 수 있거니와 섞인 것은 무슨 形像이냐?

만일 見이 아니라면 어떻게 明을 보며, 만일 곧 見이라면 어떻게 견을 보겠느냐? 반드시 見이 圓滿하다면 어느 곳에 明이 和하였으며, 만일 明이 圓滿하다면 見과 和하지 아니 하였으리라.

見은 明과 다르므로, 섞이었으면 性이 밝다는 이름을 잃었을 것이니, 섞이어서 밝은 性을 잃었으면, 明과 和하였다는 말이 옳지 아니하리라.

저 暗과 通과 塞과 和하였다는 것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또 阿難아, 너의 지금 妙淨한 見精이 明과 合하였느냐, 暗과 合하였느냐, 通과 合하였느냐, 塞과 合하였느냐?

만일 明과 合하였다면, 暗할 적에는 明相은 이미 滅하였고, 이 見이 暗과는 合하지 아니하였을 터인데, 어떻게 暗을 보느냐?

만일 暗을 볼적에 暗과 合하지 않았다면, 明과 合한 것도 明을 보지 못해야 하리라. 이미 明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明과 合하였다 하며, 明은 暗이 아닌 줄을 알겠느냐?

저 暗과 通과 塞과 合하였다는 것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저의 생각에는 이 妙한 覺의 根元이 여러 緣塵과 心과 念과 慮로 더불어 和合함이 아닌 듯 하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네가 또 覺이 和合이 아니라 하니, 다시 네게 묻노라. 이 妙한 見精이 和合이 아니라면, 明과 和하지 않았느냐, 暗과 和하지 않았느냐, 通과 和하지 않았느냐, 塞과 和하지 않았느냐?

만일 明과 和하지 않았다면 見과 明이 邊畔이 있어야 하리니, 네가 자세히 보라. 어디까지는 明이요, 어디까지는 見이냐? 見과 明이 어디로 畔이 되었느냐?

阿難아, 만일 明際에 見이 없다면 서로 미칠 수 없어서, 明相이 있는 데를 알지 못하리니, 畔이 어떻게 成立되겠느냐?

저 暗과 通과 塞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또 妙한 見精이 和合이 아니라면, 明과 合하지 않았느냐, 暗과 合하지 않았느냐, 通과 合하지 않았느냐, 塞과 合하지 않았느냐?

만일 明과 合하지 않았다면, 見과 明의 性이 서로 乖角하리니, 마치 耳와 明이 서로 觸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보아도 明相이 있는데를 알지 못할 것이어늘, 어떻게 合하고 合하지 않은 理를 밝히겠느냐?

저 暗도 通과 塞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13. 四科에서 如來藏을 보이다

 

① 五陰이 곧 如來藏

阿難아, 네가 오히려 一切의 浮塵인 모든 幻化의 相이 當處에서 出生하여 隨處에서 滅盡함을 알지 못하나니, 幻妄을 相이라 하거니와, 그 性은 참으로 妙覺의 밝은 本體니라. 이와 같이 五陰과 六入과 十二處와 十八界가 모두 因緣이 和合하면 虛妄하게 생겨나고, 因緣이 別離하면 虛妄하게 滅하느니라.

진실로 生滅去來가 本來 如來藏의 常住하고 妙明하며 動하지 않고 周圓한 妙한 眞如의 性인 줄을 알지 못하는구나! 性의 眞常한 中에서는 去來와 迷悟 生死를 求하여도, 조금도 얻을 수 없느니라.

阿難아, 어찌하여 五陰이 本來 如來藏인 妙한 眞如의 性이라 하느냐? 阿難아, 譬喩하면 어떤 사람이 淸淨한 눈으로 晴明한 虛空을 볼적에는, 다만 晴明한 虛空 뿐이요, 훤칠하게 아무것도 없다가, 그 사람이 無故하게 目睛을 動하지 않고, 瞪하여 勞를 發하면, 곧 虛空에서 狂華를 보기도 하며, 一切의 狂亂非相이 있게 되나니, 色陰도 이러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阿難아, 이 狂華가 虛空에서 온 것도 아니며, 눈에서 난 것도 아니니라.

그러니라. 阿難아, 만일 虛空에서 왔다면, 이미 虛空에서 왔으니, 갈 적에는 虛空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며, 만일 出入이 있으면, 虛空이 아닐 것이요, 虛空이 만일 空하지 않았으면, 스스로 華相의 起滅을 容納하지 못하리니, 마치 阿難의 體에 阿難을 容納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으리라.

만일 눈에서 나왔다면, 이미 눈에서 나왔으니, 도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며, 이 狂華의 性이 눈에서 나왔으므로, 마땅히 見이 있어야 할 것이요, 만일 見이 있다면, 나가서 虛空에 狂華가 되었으니 돌아올 적에는 눈을 보아야 할 것이니라. 만일 見이 없다면, 나가서 虛空을 가리웠으므로 돌아와서는 눈을 가리워야 할 것이니라.

또 狂華를 볼적에는, 눈에는 가리움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晴明한 虛空을 볼적을 淸明한 눈이라 하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色陰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마치 어떤 사람이 手足이 편안하고, 百骸가 調適하여 忽然히 生을 잊은 듯하여 違하고 順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無故히 空中에서 두 손을 마주 비비면, 두 손바닥에 虛妄하게 澁하거나 滑하거나 차거나 더운 相들이 생기나니, 受陰도 이러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阿難아, 이 여러 가지 幻觸이 虛空에서 온 것도 아니며, 손바닥에서 난 것도 아니니라.

그러니라. 阿難아, 만일 虛空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닥에 觸하였는데, 어쩨서 몸에는 觸하지 않느냐? 虛空이 選擇하여 와서 觸하지는 아니하리라.

만일 손바닥에서 난다면, 손바닥을 合해야 날 것이 아니며, 또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合할 적에 손바닥이 안다면, 떼면 觸이 들어갈 것이니, 팔과 손목과 骨髓들이 들어가는 蹤跡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만일 깨닫는 마음이 있어 나오을 알고 들어감을 안다면, 스스로 一物이 있어서 身中에서 往來하는 것이어늘, 어찌하여 合해서 아는 것을 觸이라 하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受陰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마치 어떤 사람이 신 梅實을 말하면 입에 물이 생기고 縣崖에 오를 것을 생각하면 발바닥이 새그롭나니, 想陰도 이러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阿難아, 이러한 신 맛이 梅實에서 나는 것도 아니며,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니라. 阿難아, 만일 梅實에서 난다면, 梅實이 제가 말할 것이니, 어째서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느냐? 만일 입으로 들어간다면, 입으로 들어야 할 것인데 어째서 귀를 기다리느냐? 만일 귀로만 듣는다면, 이 물이 귀에서는 나지 않느냐?

縣崖에 오를 것을 생각함도 말하는 것과 같느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想陰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마치 瀑流가 波浪이 서로 繼續하여 前際와 後際가 서로 踰越하지 않나니, 行陰도 이러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阿難아, 이렇게 흐르는 性이 虛空을 因하여 나는 것도 아니며, 물을 因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물의 性도 아니며, 虛空과 물을 여읜것도 아니니라.

그러니라. 阿難아, 만일 虛空에서 난다면 十方의 그지없는 虛空이 그지없는 흐름을 이루리니, 世界가 自然히 淪溺하게 되리라.

만일 물을 因하여 있다면, 이 瀑流의 性은 물이 아닐 것이며, 有와 所有의 相이 現在하여야 할 것이요, 만일 물의 性이라면 澄淸할 때에는 물의 體性이 아니리라.

만일 虛空과 물을 여의었다면, 虛空은 밖이 있는 것 아니며, 물밖에는 흐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行陰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어떤 사람이 頻伽甁의 두 구멍을 막고, 가운데 虛空을 가득하게 담아가지고 千里나 먼 곳에 가서 他國에서 使用하나니, 識陰도 이러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阿難아, 이와 같은 허공이 彼方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此方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니라. 阿難아, 만일 彼方에서 왔다면 甁속에 虛空을 담아가지고 갔으므로, 本來 甁 있던 곳에는 虛空이 조금 적어졌어야 할 것이며, 이 곳에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甁을 기우릴 적에는 허공이 나와야 하리라.

그러므로 알아라. 識陰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第三

 

② 六入이 곧 如來藏

『또 阿難아, 어찌하여 六入이 本來 如來藏인 妙한 眞如의 性이라 하느냐?

阿難아, 저 目睛이 瞪하여 勞를 發한 것은 눈과 疲勞한 것이 모두 菩提가 瞪하여 勞를 發한 相이니라.

明과 暗의 두 가지 妄塵을 因하여 見을 發하여 가운데 있으면서, 이 塵象을 吸取하는 것을 見하는 性이라 하거니와, 이 見이 明과 暗의 二塵을 여의고는 畢竟에 自體가 없느니라.

그러니라, 阿難아, 마땅히 알아라. 이 見이 明이나 暗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根에서 나는 것도 아니며, 虛空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만일 明에서 왔다면, 暗하면 따라서 滅할 것이니, 暗을 보지 못해야 하며, 만일 暗에서 왔다면, 明하면 따라서 滅할 것이니 明을 봄이 없어야 하리라.

만일 根에서 났다면, 반드시 明과 暗이 없으리니, 그렇다면 見性이 本來 自性이 없을 것이니라.

만일 虛空에서 생긴다면 앞으로 塵象을 보았으니, 물러가서는 根을 보아야 할 것이며, 또 虛空이 제가 보는 것이니, 너의 入에야 무슨 關係야 있겠는가?

그러므로 알아라. 眼入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마치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귀를 急히 막으면, 耳根이 疲勞한 까닭으로 머리에서 소리가 나나니, 귀와 피로한 것이 모두 菩提가 瞪하여 勞를 發한 相이니라.

動하고 靜한 二種의 妄塵을 因하여 聞을 내어 가운데 있으면서 이 塵象을 吸取하는 것을 聽聞하는 性이라 하거니와, 이 聞이 動과 靜의 二塵을 여의고는 畢竟 自體가 없느니라.

그러니라 阿難아, 마땅히 알아라. 이 聞이 動이나 靜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根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虛空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만일 靜에서 왔다면, 動하면 따라서 滅할 것이니, 動을 듣지 못해야 하며, 만일 動에 왔다면, 靜하면 따라서 滅할 것이니, 靜함을 깨달음이 없어야 하리라.

만일 根에서 났다면, 반드시 動과 靜이 없으리니, 그렇다면 聞體가 本來 自性이 없을 것이니라.

만일 虛空에서 생긴다면, 들음이 있어 性이 되었으므로 虛空이 아닐 것이며, 또 虛空이 제가 듣는 것이니, 너의 入에야 무슨 關係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알아라, 耳入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어떤 사람이 코를 急히 드리켜 오래되면 疲勞하여지므로, 鼻中에 冷觸이 있음을 맡으며, 觸을 因하여 通하고 塞하고 虛하고 實함과, 乃至 香氣와 臭氣를 맡나니, 코와 疲勞한 것이 모두 菩提가 瞪하여 勞를 發한 相이니라.

通하고 塞한 二種의 妄塵을 因하여 맡음을 내어 가운데 있으면서, 이 塵象을 吸取하는 것을 齅聞하는 性이라 하거니와, 이 齅聞이 通과 塞의 二塵을 여의고는 畢竟에 自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이 齅聞이 通이나 塞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根에서 나는 것도 아니며, 虛空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만일 通에서 왔다면, 塞하면 聞이 滅할 것이니, 어떻게 塞함을 알며, 塞을 因하여 있다면, 通하면 聞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香觸과 臭觸을 發明하겠느냐?

만일 根에서 났다면, 반드시 通과 塞이 없으리니, 그렇다면 聞機가 本來 自性이 없을 것이니라.

만일 虛空에서 생긴다면, 이聞이 도로 네 코를 맡아야할 것이며, 虛空이 제가 맡는 것이니, 너의 入에야 무슨關係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鼻入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譬喩컨대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핥아 오래 빨면 疲勞하여지므로, 그 사람이 病이 있으면 苦味가 있고, 病이 없으면 甛觸이 있으리라. 이 甛하고 苦함을 말미암아, 혀가 動하지 않을 적에는 淡性이 항상 있음을 나타내나니, 혀와 疲勞한 것이 모두 菩提가 瞪하여 勞를 發한 相이니라.

甛하고 苦하고 淡한 二種의 妄塵을 因하여 알음을 내어 가운데 있으면서, 이 塵象을 吸取하는 것을 맛을 아는 性이라 하거니와, 이 맛을 아는 性이 甛과 苦와 淡의 二種을 여의고는 畢竟에 自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阿難아, 마땅히 알아라. 이 苦와 淡을 맛보아 아는 知가 甛이나 苦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淡을 因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根에서 나는 것도 아니며, 虛空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만일 甛과 苦에서 왔다면, 淡하면 知가 滅할 것이니, 어떻게 淡함을 알며, 淡으로부터 왔다면, 甛하면 知가 없어질 것인데, 어떻게 甛과 苦의 二相을 알겠느냐?

만일 舌根에서 났다면, 반드시 甛과 淡과 苦의 塵이 없으리니, 이 맛을 아는 根이 本來 自性이 없을 것이니라.

만일 虛空에서 생긴다면, 虛空이 스스로 맛볼 것이니, 네 입으로 알 것이 아니며, 또 虛空이 제가 아는 것이니, 네게야 무슨 關係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舌入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며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마치 어떤 사람이 찬 손으로 더운 손에 觸할 적에 찬 勢力이 많으면, 더운 손이 차고, 더운 편이 많으면, 찬 손이 더워지느니라. 이와 같이 合하여 아는 觸으로 떼어서 앎을 나타내거니와 相涉하는 勢力이 이루어지는 것은 疲勞한 觸을 因함이니, 몸과 疲勞한 것이 모두 菩提가 瞪하여 勞를 發한 相이니라.

離하고 合하는 二種의 妄塵을 因하여 覺을 내어 가운데 있으면서, 이 塵象을 吸取하는 것을 知覺하는 性이라 하거니와, 이 知覺의 體가 離와 合과 違와 順의 二塵을 여의고는 畢竟에 自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阿難아, 마땅히 알아라. 이 覺이 離나 合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違나 順으로 있는 것도 아니며, 根에서 나는 것도 아니며, 虛空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만일 合할 때에 온다면, 離할 적에는 滅할 것이니, 어떻게 離함을 알겠는가? 違와 順의 二相도 역시 그러하니라.

만일 根에서 났다면, 반드시 離와 合과 違와 順의 四相이 없으리니, 너의 身으로 知覺하는 것이 元來 自性이 없으리라.

반드시 虛空에서 생긴다면, 虛空이 스스로 知覺할 것이니, 너의 入에야 무슨 關係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身入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마치 어떤 사람이 疲勞하면 자고, 실컷 자고는 깨어서, 塵을 보고는 記憶하고, 記憶이 없어지면 忘却하니, 이것이 顚倒한 生. 住. 異. 滅이라, 吸習하여 가운데로 돌아가서, 서로 踰越하지 아니함을 意知의 根이라 하나니, 意와 疲勞한 것이 모두 菩提가 瞪하여 勞를 發한 相이니라.

生하고 滅하는 二種의 妄塵을 因하여 知를 集하여 가운데 있으면서, 內塵을 吸撮하되, 見聞이 逆流하거나, 流로 미칠 수 없는 자리를 覺知하는 性이라 하거니와, 이 覺知하는 性이 寤와 寐와 生과 滅의 二塵을 여의고는 畢竟에 自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阿難아, 마땅히 알아라. 이 覺知하는 根이 寤나 寐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生이나 滅로 있는 것도 아니며, 根에서 나는 것도 아니며, 虛空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만일 寤에서 온다면, 寐하면 따하 滅하리니, 무엇으로 寐하며, 生할 때에 있다면, 滅할 적에는 없을 것이니, 무엇이 滅을 받으며, 滅하므로 있다면, 生할 적에는 滅이 없으리니 무엇이 生함을 알겠느냐?

만일 根에서 났다면, 寤와 寐의 二相은 몸의 開合을 따름이니, 이 二體를 여의고는, 이 覺知가 空華와 같아서 畢竟에 性이 없으리라.

만일 虛空에서 생긴다면, 이것은 虛空이 아는 것이니, 너의 入에야 무슨 關係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意入이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③ 十二處가 곧 如來藏

또 阿難아, 어찌하여 十二處가 本來 如來藏인 妙한 眞如의 性이라 하느냐?

阿難아, 네가 이 祇陀林과 泉池들을 보나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色이 眼의 見을 내느냐, 眼이 色相을 내느냐?

阿難아, 만일 眼根이 色相을 낸다면, 空을 볼적에는 色이 아니니, 色의 性이 銷滅하였을 것이요, 銷滅하였으면 一切를 顯發함이 아주 없으리니, 色相이 없으면 어떻게 空의 質을 밝히겠느냐? 空도 또한 그러하니라.

만일 色塵이 眼의 見을 낸다면, 空을 볼적에는 色이 아니매 銷亡할 것이며, 銷亡하였으면 아무 것도 없으리니, 무엇이 空과 色을 밝히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見과 色과 空이 모두 處所가 없어서, 色과 見의 二處가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네가 이 祇陀園에서 밥이 마련되면 북을 치고, 大衆이 모임에는 鍾을 쳐서, 鍾소리. 북소리가 前後로 相續함을 듣나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소리가 耳邊에 오느냐, 귀가 聲處에 가느냐?

阿難아, 만일 소리가 耳邊에 온다면, 내가 室羅茷城에서 乞食할 적에는, 祇陀林에는 내가 없드시, 이 소리가 阿難의 耳邊에 왔으면, 目連과 迦葉은 함께 듣지 못할 것이어늘, 어떻게 一千二百五十 沙門이 한꺼번에 鍾소리를 듣고 모두 食堂으로 오느냐?

만일 네 귀가 聲處에 갔다면, 내가 祇陀林에 돌아왔을 적에는, 室羅茷城에는 내가 없드시, 네가 북소리를 들을 적에는 귀가 북치는 곳에 갔을 터이니, 鍾소리가 함께 나더라도 모두 듣지 못해야 할 것인데, 하물며 象. 馬. 牛. 羊의 種種 音響을 들이겠느냐.

만일 오지도 가지도 않는다면 들음도 없어야 하리라.

그러므로 알아라. 聽과 音聲이 모두 處所가 없어서, 聽과 聲의 二處가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네가 또 香爐의 栴檀을 맡으라. 이 香을 一銖만 살라도 室羅茷城의 四十里內에서 同時에 香氣를 맡나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香氣가 栴檀木에서 나느냐, 네 코에서 나느냐, 虛空에서 생기느냐?

阿難아, 만일 이 香氣가 네 코에서 난다면, 코에서 났다고 하므로, 마땅히 코에서 나와야 할 것이며, 코가 栴檀이 아닌데 어떻게 코에 栴檀 냄새가 있겠느냐? 또 네가 香氣를 맡는다 하니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코에서 나오는 香氣를 맡는다는 말은 옳지 아니하니라.

만일 虛空에서 생긴다면, 空의 性이 恒常한 것이매, 香氣도 恒常있어야 할 것이어늘, 어찌하여 香爐에 이 枯木을 살라야 하느냐?

만일 나무에서 난다면, 이 香質이 타서 烟氣가 되었으니 코로 맡을 적에 烟氣가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이어늘, 그 烟氣가 空中으로 올라가 퍼지기도 전에 四十里 안에서 어떻게 맡게 되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香과 鼻와 齅聞이 모두 處所가 없어서, 齅聞과 香의 二處가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네가 每日 두 때씩 大衆 가운데서 鉢盂를 들적에 이따금 酥. 酪. 醍醐를 만나면 上味라 하나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맛이 虛空에서 생기느냐, 혀에서 나느냐, 飮食에서 나느냐?

阿難아, 만일 맛이 네 혀에서 난다면, 네 입에는 혀가 하나 뿐이니, 그 혀가 그때에 酥맛이 되었으면, 黑石蜜을 먹어도 달라지지 않아야 하리라.

만일 달라지지 않으면, 맛을 안다 할 수 없고, 만일 달라진다면, 혀가 여러 體가 아닌데, 어떻게 여러 가지 맛을 한 혀로 아느냐?

만일 飮食에서 난다면, 飮食은 識이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스스로 알겠느냐? 또 飮食이 제가 아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같으리니, 네게는 무슨 관계가 있길래 맛을 안다하느냐?

만일 虛空에서 생긴다면, 네가 虛空을 씹어보라, 무슨 맛이 나느냐? 虛空이 만일 짜다면, 네 혀를 짜게 하였으므로 네 얼굴도 짜게 하리니, 그러면 이 世界 사람들이 海魚와 같을 것이며, 항상 짜기만 하다면, 淡한 것은 알지 못할 것이요, 만일 淡을 알지 못한다면, 짠것도 알지 못할 것이니, 반드시 아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맛본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味와 舌과 맛보는 것이 모두 處所가 없어서, 맛보는 것과 맛의 二處가 다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오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네가 아침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나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만져서 아는 것은, 어느 것이 能觸이 되느냐? 能觸이 손에 있느냐, 머리에 있느냐?

만일 손에 있다면, 머리는 앎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觸이 되며, 만일 머리에 있다면, 손에는 앎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觸이라 하느냐?

만일 각각 있다면, 너 阿難이 二身이 있으리라.

만일 머리와 손이 한 觸으로 되는 것이라면, 손과 머리가 一體가 되어야 할 것이요, 만일 一體라면 觸을 이룰 수 없고, 만일 二體라면, 觸이 어디 屬하느냐? 能觸에 屬하면 所觸이 아닐 것이요, 所觸에 屬하면 能觸이 아닐 것이며, 그렇다고 虛空이 너를 爲하여 觸이 되지도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알아라. 깨닫는 觸과 몸이 모두 處所가 없어서, 몸과 觸의 二處가 다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너의 意中에 攀緣하는 善性. 惡性. 無記性이 法則을 이루나니, 이 法塵이 心에 卽하여 생긴 것이냐, 心을 떠나서 따로 方所가 있느냐?

阿難아, 만일 心에 卽하였다면, 이 法이 塵이 아니므로, 心으로 緣할 것이 아니니, 어떻게 處를 이루겠느냐?

만일 心을 떠나서 따로 方所가 있다면, 이 法의 自性이 앎이 있느냐, 앎이 없느냐?

만일 앎이 있다면 心이라 할 터인데, 너와는 다르고, 塵은 아니므로, 다른 사람의 心量과 같을 것이며, 네게 卽하였고 곧 心이라면, 어찌하여 네 心이 둘이 되겠느냐?

만일 앎이 없다면 이 塵은 色. 聲. 香. 味와 離合과 冷煖과 虛空相이 아니니, 어디 있는 것이냐? 이제 色과 空에 모두 表示할 수 없으며, 또 人間에 空外가 있을 수 없느니라. 心이라면 所緣이 아니니, 處가 어떻게 成立되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法則과 心이 모두 處所가 없어서 意根과 法塵의 二處가 다 虛妄하여,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④ 十八界가 곧 如來藏

또 阿難아, 어찌하여 十八界가 本來 如來藏인 妙한 眞如의 性이라 하느냐?

阿難아, 네가 밝히 아는 바와 같이, 眼과 色이 緣이 되어 眼識을 낸다 하나니, 이 識은 眼을 因하여 났다 하여 眼으로 界라 하겠느냐? 色을 因하여 났다 하여 色으로 界라 하겠느냐?

阿難아, 만일 眼을 因하여 났다면, 이미 色과 空이 없으므로 分別할 것이 없으리니, 비록 네 識이 있은들 무엇에 쓰겠느냐? 네 見이 靑. 黃. 赤. 白이 아니므로 表示할 것이 없으리니, 무엇을 의지하여 界를 세우겠느냐?

만일 色을 因하여 났다면, 空하여 色이 없을 때에는 너의 識이 滅하리니, 어떻게 虛空性인 줄을 알겠느냐?

만일 色이 變遷할 적에, 네가 그 色相의 變遷함을 안다면, 네 識은 變遷하지 않는 것이니, 界가 무엇을 의지하여 成立되겠느냐? 따라서 變遷한다면, 곧 變遷할 것이니, 界相이 없을 것이며, 變遷하지 않는다면, 恒常할 것이니, 色으로 조차 났으므로 虛空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해야 하리라.

만일 二種을 兼하여서 眼과 色이 함께 냈다 할진댄, 合하였다면 中이 離하였을 것이요, 離하였다면 두군데로 合했을 것이라, 體性이 雜亂하리니, 어떻게 界를 이루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眼과 色이 緣이 되어 眼識界를 낸다 하거니와, 三處가 모두 虛無하여, 眼과 色과 色界의 셋이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또 네가 밝히 아는 바와 같이, 耳와 聲이 緣이 되어 耳識을 낸다 하나니, 이 識은 耳를 因하여 났다하여 耳로 界라 하겠느냐, 聲을 因하여 났다하여 聲으로 界라 하겠느냐?

阿難아, 만일 耳를 因하여 났다면, 動과 靜의 二相이 現前하지 않으므로, 根이 알것이 없을 것이요, 반드시 알 것이 없으면 知도 成立할 수 없거니, 識이 무슨 모양이겠느냐?

만일 귀로 듣는 것을 取한다면, 動과 靜이 없으므로 聞이 成立할 수 없을 것이며, 어떻게 耳形의 色塵. 觸塵들이 섞인 것을 識界라 하겠느냐? 곧 耳識界가 무엇으로 조차 成立되겠느냐?

만일 聲에서 났다면, 識이 聲을 因하여 있는것이므로, 聞과는 關係가 없을 것이며, 聞이 없으면 聲相의 있는데가 없으리라.

識이 聲에서 난다 하고, 聲은 聞함을 因하여서야 聲相이 있다고 許한다면, 들을 적에 識을 들어야 하리라. 듣지 못한다면 界가 아니요, 듣는다면 聲과 같아서, 識이 이미 들리었으니, 무엇이 識을 듣는 줄을 알겠느냐? 만일 아는 이가 없다면 草木과 같으리라.

聲과 聞이 섞이어서 中界를 이루지는 않았을 것이니, 界라는 中位가 없으면, 內外의 相이 어떻게 成立되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耳와 聲이 緣이 되어 耳識界를 낸다 하거니와, 三處가 모두 虛無하여, 耳와 聲과 聲界의 셋이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또 네가 밝히 아는 바와 같이, 鼻와 香이 緣이 되어 鼻識을 낸다 하나니, 이 識은 鼻를 因하여 났다하여 鼻로 界라 하겠느냐, 香을 因하여 났다하여 香으로 界라 하겠느냐?

阿難아, 만일 鼻를 因하여 난다면, 네 마음에는 무엇을 鼻라 하느냐. 살로 된 쌍손톱 모양을 取하느냐, 맡아 아는 動搖하는 性을 取하느냐?

만일 살로 된 形像을 取한다면, 살로 된 것은 몸이요, 몸으로 아는 것은 觸이니, 몸이라 하면 鼻가 아니요, 觸이라 하면 곧 塵이라, 鼻라는 이름도 없거늘, 어떻게 界를 成立하겠느냐?

만일 맡아 아는 것을 取한다면, 네 생각에 무엇이 안다 하느냐? 살이 안다면, 살로 아는 것은 觸이요, 鼻가 아니니라. 虛空이 안다면 虛空 제가 아는 것이매, 살을 깨닫는 것이 아니리니, 그렇다면 虛空이 곧 네가 되고, 네 몸은 아는 것이 아니므로 오늘날, 阿難이 存在가 없으리라. 香이 안다면, 아는 것이 香에 屬하였거니, 네게는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만일 香氣와 臭氣가 네 코에서 나는 것이라 하면, 저 香氣와 臭氣가 伊蘭과 栴檀에서 나는 것이 아니리니, 두 나무가 있지 않을 적에 네 코를 맡아보라, 향기로우냐, 구리냐? 구리다면 香은 아니요, 향기로우면 구리지는 아니하리라. 만일 향기롭고 구린 것을 모두 맡는다면, 너에게 두 코가 있으리니, 나에게 道를 묻는데 두 阿難이 있을 것이니, 어느 것이 너의 本體이냐?

만일 코가 하나라면, 香氣와 臭氣가 둘이 없을 것이니, 臭氣도 香氣가 되고 香氣도 臭氣가 되어, 二性이 있지 아니하리니, 界가 무엇을 의지하여 成立되겠느냐?

만일 香으로 因하여 난다면, 識이 香을 因하여 나는 것이니, 마치 눈으로 因하여 있는 見이, 눈을 보지 못하듯이, 香을 因하여 있으므로 香을 알지 못해야 하리라.

안다면 난 것이 아니요, 알지 못한다면 識이 아니며, 香이 知로 有함이 아니라면, 香界가 成立되지 못하고, 識이 香을 알지 못하면, 因한 界가 香으로 조차 建立한 것이 아니리라.

이미 中間이 없으면, 內와 外가 成立되지 못하며, 저 맡는 性이 畢竟에 虛妄하리라.

그러므로 알아라. 鼻와 香이 緣이 되어 鼻識界를 낸다 하거니와, 三處가 모두 虛無하여, 鼻와 香과 香界의 셋이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또 네가 밝히 아는 바와 같이, 舌과 味가 緣이 되어 舌識을 낸다 하나니, 이 識은 舌을 因하여 났다 하여 舌로 界라 하겠느냐, 味를 因하여 났다하여 味로 界라 하겠느냐?

阿難아, 만일 舌을 因하여 났다면, 世間에 있는 甘蔗. 烏栴. 黃蓮. 石鹽. 細辛. 薑. 桂가 모두 맛이 없을 것이니, 네가 스스로 舌을 맛보라, 다냐, 쓰냐?

만일 舌의 性이 쓰다면 누가 舌을 맛보느냐? 舌이 스스로 맛보지는 못하리니, 무엇이 知覺하겠느냐? 舌의 性이 쓰지 않다면, 맛이 나지 못하리니, 어떻게 界를 成立하겠느냐?

만일 맛을 因하여 난다면, 識이 스스로 맛이 되었는지라, 舌根이 스스로 맛보지 못함과 같으리니, 어떻게 맛인지 맛 아닌지를 알겠느냐?

또 온갖 맛이 한 물건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 맛이 여러 가지에서 나는 것이므로, 識도 여러 體가 되어야 하리라. 識의 體가 하나라 하고, 體가 반드시 맛에서 난다면, 鹹. 淡. 甘. 辛. 和合. 俱生과 여러 가지 變異한 것이 모두 한 맛이 되어 分別이 없을 것이요, 分別이 없으면 識이라 이름하지 못하리니, 어떻게 舌識界라 하겠느냐? 虛空이 너의 心識을 내지는 아니하리라.

舌과 味가 和合하여 낸다면, 그 가운데는 元來 自性이 없으리니, 어떻게 界가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舌과 味가 緣이 되어 舌識界를 낸다 하거니와, 二處가 모두 虛無하여서, 舌과 味와 舌界의 셋이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또 네가 밝히 아는 바와 같이, 身과 觸이 緣이 되어 身識을 낸다 하나니, 이 識은 身을 因하여 났다하여 身으로 界라 하겠느냐, 觸을 因하여 났다하여 觸으로 界라 하겠느냐?

阿難아, 만일 身을 因하여 났다면, 반드시 合과 離의 覺觀할 緣이 없으리니, 身이 무엇을 알겠느냐?

만일 觸을 因하여 났다면, 반드시 네 身이 없으리니, 어찌 身이 아니고서 合과 離를 아는 것이 있겠느냐?

阿難아, 物은 觸하여도 알지 못하고, 身으로야 觸이 있음을 아나니, 身을 아는 것은 곧 觸이요, 觸을 아는 것은 곧 身이라, 곧 觸이라면 身이 아니요, 곧 身이라면 觸이 아니리라.

身과 觸의 二相이 元來 處所가 없나니, 身에 合하였으면 곧 身의 自體性일 것이요, 身을 離하였으면 곧 虛空과 같은 相이리라. 內와 外가 이루지 못하면 中이 어떻게 成立되겠느냐? 中이 成立되지 못하면 內外의 性이 空하리니, 네 識이 난다 하더라도 무엇을 의지하여 界를 세우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身과 觸이 緣이 되어 身識界를 낸다 하거니와, 三處가 모두 虛無하여, 身과 觸과 身界의 셋이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阿難아, 또 네가 밝히 아는 바와 같이, 意와 法이 緣이 되어 意識을 낸다 하나니, 이 識은 意를 因하여 났다하여 意로 界라 하겠느냐, 法을 因하여 났다하여 法으로 界라 하겠느냐?

阿難아, 만일 意를 因하여 났다면 네 意中에 반드시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네 意를 發明하나니, 만일 앞엣 法이 없으면 意가 나지 못하리라. 緣을 여의고는 形象이 없으리니, 識이 장차 무엇하겠느냐?

또 너의 識心이 思量함과 了別하는 性으로 더불어 같다 하느냐, 다르다 하느냐? 意와 같으면 곧 意일 것이니, 어떻게 낸 것이라 하겠느냐? 意와 다르면 같지 아니하므로, 識이 없어야 할 것이니, 만일 識이 없다면 어찌 意에서 났다 하며, 만일 識이 있으면 어떻게 識의 意라 하겠느냐?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二性이 이루지 못하면 界가 어떻게 成立되겠느냐?

만일 法을 因하여 난다면, 世間의 모든 法이 五塵을 여의지 못하나니, 네가 보라, 色法. 聲法. 香法. 味法. 觸法의 相狀이 分明하여 五根을 對하는 것이므로, 意에 攝할 것이 없느니라.

네 識이 決定코 法에서 난다면, 네가 이제 자세히 보라, 法塵이라는 法은 무슨 모양이냐?

만일 色과 空, 動과 靜, 通과 塞, 合과 離, 生과 滅을 여읜다면, 이 여러 가지 相을 떠나서는 얻을 것이 없느니라. 生한다면, 色. 空等의 法이 生하고, 滅한다면 色. 空等의 法이 滅하느니라.

因할 바가 없다면, 因하여 났다는 識이 무슨 形相이며, 相狀이 없으면 界가 어떻게 나겠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意와 法이 緣이 되어 意識界를 낸다 하거니와, 三處가 모두 虛無하며, 意와 法과 意界의 셋이 本來 因緣도 아니요 自然도 아닌 性이니라.』

 

14, 七大에서 如來藏을 보이다

 

阿難이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如來께서 和合하는 因緣을 항상 말씀하실 적에 [一切世間의 가지가지 變化하는 것이 다 四大의 和合으로 因하여 發明한다]하시더니, 如來께서 어찌하여 因緣과 自然을 모두 排擯하시나이까? 제가 지금 이 이치를 알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哀愍하시는 마음으로 衆生에게 中道인 了義이고, 戱論이 아닌 法을 開示하소서.』

이때 世尊께서 阿難에게 말씀하였다.

『네가 먼저 聲聞과 緣覺의 小乘法을 싫어하고, 發心하여 無上菩提를 求하기에, 내가 지금 第一義諦를 너에게 開示하였는데, 어째서 또 世間의 戱論과 妄想인 因緣에 얽매이느냐? 네가 비록 多聞하다지만, 마치 藥을 말하는 사람이, 現前한 眞藥을 分別하지 못함과 같으므로, 如來가 너를 可憐하다 하느니라.

너는 자세히 들으라. 내 이제 分別하여 開示하며, 또한 當來에 大乘을 修行하려는 이로 하여금 實相을 通達케 하리라.』

阿難이 잠자코 佛의 聖旨를 받잡더라.

『阿難아, 네 말이 [四大의 和合으로 世間의 가지가지 變化하는 것이 發明한다 하거니와, 阿難아, 만일 大의 性이 自體가 和合이 아니라면, 能히 諸大와 雜和하지 못하리니, 마치 虛空이 諸色과 和合하지 못함과 같을 것이요, 만일 和合이라면 變化함과 같아서, 始와 終이 서로 이루고, 生과 滅이 서로 繼續하여, 났다 죽고 죽었다 나며, 나고 나고, 죽고 죽어, 마치 旋火輪이 休息하지 못함과 같으리라.

阿難아, 마치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얼음이 도로 물 되는 것과 같느니라.

네가 地大의 性을 보라. 큰 것은 大地요, 가는 것은 微塵이어니와 隣虛塵은 저 極微인 色邊諸相을 七分으로 쪼개어 된 것이니, 隣虛塵을 다시 쪼개면 곧 虛空이 되는니라.

阿難아, 만일 隣虛塵을 쪼개어 虛空이 된다면, 虛空이 色相을 내는 것임을 알 것이니라.

네가 묻기를 [和合함을 말미암아 世間의 모든 變化相이 생긴다]하였으니, 네가 보라. 한 隣虛塵은 虛空이 얼마나 和合하여 이루어졌느냐? 隣虛塵이 和合하여 隣虛塵이 되지는 않았으리라.

또 隣虛塵을 쪼개어 虛空이 된다면 얼마나 많은 色相을 쪼개 모아서 虛空이 되었겠느냐?

만일 色相을 合하였을 때에는 色을 合한 것이라, 空이 아닐 것이요, 空을 合하였을 때에는 空을 合한 것이라, 色이 아닐 것이니라. 色相은 설사 쪼갤 수 있다 하려니와, 虛空이야 어떻게 合하겠느냐?

네가 元來 알지 못하는구나. 如來藏中에 性이 色인 眞空과, 性이 空인 眞色이, 淸淨하고 本然하여 法界에 周遍하여 있으면서 衆生의 마음을 따르고 所知의 量에 應하느니라.

業을 따라 發現하는 것이어늘, 世間이 無知하여 因緣이라 自然性이라 疑惑하나니, 다 識心으로 分別하고 計度하는 것이라, 다만 言說이 있을 뿐이요, 전혀 實義가 없느니라.

阿難아, 火大의 性이 我가 없어서, 여러 緣에 寄托하나니, 네가 이 城中에 밥 먹지 못한 집을 보라, 밥을 지으려 할 적에, 손에 陽燧를 들고 해에 비취어 불을 求하느니라.

阿難아, 이것을 和合이라 한다면, 마치 나와 너와 一千二百五十比丘가 一衆이 되었나니, 衆은 비록 하나이나, 그 根本을 따지면 各各 몸이 있고, 모두 태어난 氏族과 名字가 있어서, 舍利弗은 婆羅門種이요, 優樓頻螺는 迦葉波種이요, 乃至 阿難은 瞿曇種姓이니라.

阿難아, 이 火의 性이 和合하여 생긴 것이라면, 저 사람이 손에 火鏡을 들고, 해에서 火를 求하나니, 이 火가 鏡中에서 나느냐, 쑥에서 생기느냐, 해에서 오느냐?

阿難아, 만일 해에서 온다면, 능히 네 손에 있는 쑥을 태우는 터이니, 오는 곳마다 숲과 나무가 모두 타야 할 것이니라.

만일 鏡中에서 난다면, 鏡中에서 나와서 쑥을 태우는데, 鏡은 어찌해서 녹지 않느냐? 네 손에 들려 있으면서 덥지도 아니한데 어찌하여 녹겠느냐?

만일 쑥에서 생긴다면, 왜 해와 火鏡의 빛이 서로 닿은 뒤에야 불이 나느냐?

네가 또 자세히 보라. 火鏡은 손에 들렸고, 해는 하늘에 떴고, 쑥은 땅에서 난 것인데, 불이 어디로부터 여기 오느냐? 해와 火鏡은 相距가 멀어서, 和도 아니고 合도 아니며, 火光이 나는데 없이 저절로 생기지도 아니하리라.

네가 오히려 알지 못하는구나. 如來藏中에 性이 火인 眞空과 性이 空인 眞火가, 淸淨하고 本然하여 法界에 周遍하여 있으면서, 衆生의 마음이 따르고 所知의 量에 應하느니라.

阿難아, 마땅히 알아라. 世上 사람이 한 곳에서 火鏡을 들면, 한 곳에 火가 생기고, 法界에 두루하게 들면, 世間에 가득하게 일어나서, 世間에 두루하게 생기나니, 어찌 方所가 따로 있겠느냐?

業을 따라 發現하는 것이어늘, 世間이 無知하여 因緣이라 自然性이라 疑惑하나니, 다 識心으로 分別하고 計度하는 것이라, 다만 言說이 있을 뿐이요, 전혀 實義가 없느니라.

阿難아, 水의 性이 一定치 아니하여, 흐르고 그치는 것이 恒常하지 아니하니라. 室羅筏城의 迦毘羅仙. 斫迦羅仙. 鉢頭摩. 訶薩多 等 大幻師들이, 太陽의 精을 求하여 幻藥을 갤 적에 이 幻師들이 白月의 밤중에, 方諸를 들고 月中의 水를 받나니, 이 水가 珠中에서 나느냐, 虛空에 스스로 있느냐, 달에서 오느냐?

阿難아, 만일 달에서 온다면, 能히 遠方에서 方諸로 하여금 水를 내게 하는 터이니, 經過하는 곳에 있는 林木마다 물이 흘러야 하리라. 흐른다면 어찌하여 方諸에서야 나느냐? 흐르지 않는다면 水가 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니라.

만일 方諸에서 난다면, 이 珠中에서 항상 물이 흘러야할 터인데, 어찌하여 밤중에 白月畫를 받아야 하느냐?

만일 虛空에서 생긴다면, 空의 性이 無邊하므로 水도 無際하여서, 人間에서 天上까지 함께 滔溺할 것이니, 어찌 水. 陸. 空行이 있겠느냐?

네가 다시 자세히 보라. 달은 하늘에 떴고, 方諸는 손에 들었고, 珠의 水를 받는 盤은 사람이 놓은 것이니, 水는 어디로부터 여기 흐르느냐?

달과 方諸는 相距가 멀어서 和도 아니고 合도 아니며, 水의 精이 오는데 없이 저절로 있지도 아니하리라.

네가 여태 알지 못하는구나. 如來藏中에 性이 水인 眞空과, 性이 空인 眞水가, 淸淨하고 本然하여 法界에 周遍하여 있으면서 衆生의 마음을 따르고 所知의 量에 應하느니라.

한 곳에서 方諸를 들면, 한 곳에 水가 생기고, 法界에 두루하게 들면, 法界에 가득하게 생기어서, 世間에 두루하게 나나니, 어찌 方所가 따로 있겠느냐?

業을 따라 發現하는 것이어늘, 世間이 無知하여 因緣이라 自然性이라 疑惑하나니, 다 識心으로 分別하고 計度하는 것이라, 다만 言說이 있을 뿐이요, 전혀 實義가 없느니라.

阿難아, 風의 性이 自體가 없어 動하고 靜함이 恒常하지 아니하리라. 네가 袈裟를 바로하고 大衆에 들어갈 적에, 僧袈梨자락이 펄럭거려 傍人에게 미치면, 가벼운 바람이 저 사람의 얼굴에 스치느니라.

이 바람은 袈裟 자락에서 나느냐, 虛空에서 생기느냐, 저 사람의 얼굴에서 나느냐?

阿難아, 이 바람이 袈裟 자락에서 난다면, 네가 바람을 입었으므로, 옷이 날려서 네 몸에서 벗어져야 할 것이니라. 내가 지금 法을 말하느라고 會中에서 袈裟를 입었으니, 네가 내 袈裟를 보라. 바람이 어디 있느냐? 袈裟속에 바람 넣는 곳이 있지는 아니하리라.

만일 虛空에서 생긴다면, 네 袈裟가 펄럭거리지 않았을 적에는 어찌하여 바람이 나지 않느냐? 虛空의 性이 항상 있는 것이매, 바람도 항상 생겨야 할 것이며, 바람이 없을 적에는 虛空이 滅했어야 하련마는, 바람이 滅함은 볼 수 있거니와 虛空이 滅함은 무슨 모양이겠느냐? 만일 生하고 滅함이 있다면 虛空이라 할 수 없고, 虛空이라 한다면 어떻게 바람이 나겠느냐?

만일 바람이 저 사람의 얼굴에서 난다면, 저 사람의 얼굴에서 나는 것이므로, 네게로 불어와야 할 것인데, 네가 袈裟를 바로하는데 바람이 어째서 거꾸로 부느냐?

너는 자세히 보라, 袈裟는 네가 바로하고, 얼굴은 저 사람에게 있고, 虛空은 寂然하여 流動하지 않거늘,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오느냐?

바람과 虛空은 性質이 乖隔하여 和도 아니고 合도 아니며, 바람이 오는데 없이 스스로 생기지도 아니하리라.

네가 宛然히 알지 못하는구나. 如來藏中에 性이 風인 眞空과 性이 空인 眞風이, 淸淨하고 本然하여 法界에 周偏하여 있으면서, 衆生의 마음을 따르고 所知의 量에 應하느니라.

阿難아, 너 一人이 袈裟를 펄럭거리면 가벼운 바람이 나고, 法界에 두루하여 펄럭거리면 國土에 가득하게 나나니, 어찌 方所가 따로 있겠느냐?

業을 따라 發現하는 것이어늘, 世間이 無知하여 因緣이라 自然性이라 疑惑하나니, 다 識心으로 分別하고 計度하는 것이라, 다만 言說이 있을 뿐이요, 전혀 實義가 없느니라.

阿難아, 空의 性이 形狀이 없어, 色을 因하여 顯發하느니라. 이 室羅筏城에서 江이 먼 곳에 있는 刹帝利나 婆羅門이나 毗舍나 首陀나 頗羅墮나 栴陀羅들이 安居를 새로 세우려 하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求할 적에, 흙이 一尺쯤 나오면 그 속에 一尺의 虛空이 생기고 그와 같이 흙이 一丈쯤 나오면 그 속에 一丈의 虛空이 생기게 되어, 虛空의 淺深이 흙이 많고 적게 나옴을 따르나니, 이 虛空은 흙을 因하여 나느냐, 팜을 因하여 나느냐, 因이 없이 스스로 생기느냐?

阿難아, 만일 이 虛空이 因이 없이 스스로 생긴다면, 흙을 파기 前에는 어찌하여 留礙함이 없지 못하고, 오직 大地뿐이어서 通達하지 못하였더냐?

만일 흙을 因하여 난다면, 흙이 나올 적에 虛空이 들어감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일 흙만 먼저 나오고 虛空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虛空이 흙을 因하여 난다 하겠느냐? 만일 나오거나 들어감이 없다면, 虛空과 흙이 원래 다른 因이 없는 것이며, 다르지 않으면 같을 것인데, 흙이 나올 적에 虛空은 어찌하여 나오지 않느냐?

만일 팜을 因하여 난다면, 파서 虛空이 나오는 것이매, 흙은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며, 팜을 因하여 나는 것이 아니라면 파서 흙이 나오는데 어째서 虛空을 보게 되느냐?

네가 자세하게 살펴서 자세히 보라. 파는 괭이는 사람의 손을 따라 이리 저리 運轉하고, 흙은 땅을 因하여 옮기나니, 虛空은 무엇을 因하여 생기느냐?

파는 일과 虛空은 참되고 虛하여서 서로 作用이 될 수 없으므로, 和도 아니고 合도 아니며, 虛空이 오는데 없이 스스로 생기지도 아니하리라.

만일 이 虛空의 性이 圓滿하고 周徧하여 本來 動搖하지 않는 것이라면, 現前의 地. 水. 火. 風과 함께 五大라고 이름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 性이 참되고 圓融하여 다 如來藏이라, 本來 生滅이 없느니라.

阿難아, 너의 마음이 昏迷하여 四大가 元來 如來藏임을 깨닫지 못하나니, 이虛空을 보라. 出하느냐,入하느냐, 出入하지 않느냐?

네가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如來藏中에 性이 覺인 眞空과, 性이 空인 眞覺이 淸淨하고 本然하여 法界에 周遍하여 있으면서, 衆生의 마음을 따르고 所知의 量에 應하느니라.

阿難아, 한 우물이 空하면, 虛空이 한 우물만치 나며, 十方의 虛空도 역시 그리하여, 十方에 圓滿하나니, 어찌 方所가 따로 있겠느냐?

業을 따라 發現하는 것이어늘, 世間이 無知하여 因緣이라 自然性이라 疑惑하나니, 다 識心으로 分別하고 計度하는 것이라, 다만 言說이 있을 뿐이요, 전혀 實義가 없느니라.

阿難아, 見의 覺이 앎이 없어 色과 空을 因하여 있느니라. 네가 지금 祇陀林에 있을 적에 아침에는 밝고 저녁에는 어두우며, 설사 밤중이라도 白月에는 빛나고 黑月에는 어둡나니, 이 明과 暗等으로 因하여 見이 分析되느니라.

이 見이 明과 暗과 太虛空으로 더불어 一體냐, 一體가 아니냐. 或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며,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냐?

阿難아, 이 見이 만일 明과 暗과 虛空으로 더불어 一體라면, 明과 暗은 二體가 서로 없이하는 것이어서, 暗할 때는 明이 없고 明할 때는 暗이 없느니라.

만일 暗과 一體라면 明할 적에는 見이 없어질 것이며, 반드시 明과 一體라면 暗할 적에는 마땅히 滅하리니, 滅하였으면 어떻게 明을 보고 暗을 보겠느냐? 만일 明과 暗은 다르더라도 見은 生滅함이 없다면 一體라는 말이 어떻게 成立되겠느냐?

만일 이 見精이 暗과 明으로 더불어 一體가 아니라면, 네가 明을 떠나고 暗을 떠나고 虛空을 떠나서 見의 근원을 分析하라. 어떤 形相이 되겠느냐? 明을 떠나고 暗을 떠나고 虛空을 떠나면, 이 見이 龜毛. 兎角과 같으리니, 明. 暗. 虛空의 三事와 다르다면 무엇을 의지하여 見을 成立하겠느냐?

明과 暗은 서로 背馳하는데 어떻게 혹 같다 하겠느냐? 三을 떠나서는 원래 없는데 어떻게 혹 다르다 하겠느냐? 虛空과 見을 나누려면 邊畔이 없는데, 어떻게 같지 않다 하겠느냐? 暗을 보고 明을 보아도 性이 遷改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르지 않다 하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하게 살피며, 微細하게 살펴서 審諦하고 審觀하라. 明은 太陽에 依하고, 暗은 黑月에 依하고, 通은 虛空에 屬하고, 壅은 大地에 屬하였는데, 見의 精은 무엇을 因하여 생기느냐?

見은 覺하는 것이요, 空은 頑한 것이어서, 和도 아니고 合도 아니며 見精이 의지한데 없이 스스로 생기지도 아니하리라.

만일 보고 듣고 아는 性이 圓滿하고 周遍하여 本來부터 動搖하지 않는다면, 無邊하고 不動하는 虛空이나, 動搖하는 地. 水. 火. 風과 아울러 함께 六大라고 할 것인 줄을 알아야 하리니, 性이 참되고 圓融하여 다 如來藏이라, 本來 生滅이 없느니라.

阿難아, 너의 性이 沈淪하여, 너의 見. 聞. 覺. 知가 本來 如來藏임을 깨닫지 못하나니, 네가 이 見. 聞. 覺. 知함을 보라. 生하느냐, 滅하느냐, 同하냐, 異하냐, 生과 滅이 아니냐, 同과 異가 아니냐?

네가 일찍 알지 못하는구나. 如來藏中에 性이 見인 覺明과 覺精인 明見이 淸淨하고 本然하여 法界에 周遍하여 있으면서, 衆生의 마음을 따르고 所知의 量에 應하느니라.

한 見根의 見이 法界에 周偏함고 같이 聽과 齅와 嘗觸과 覺觸과 覺知의 妙德이 瑩然하여 法界에 周徧하여 十方虛空에 圓滿하나니 어찌 方所가 따로 있겠느냐?

業을 따라 發現하는 것이어늘, 世間이 無知하여 因緣이라 自然性이라 疑惑하나니, 다 識心으로 分別하고 計度하는 것이라, 다만 言說이 있을 뿐이요, 전혀 實義가 없느니라.

阿難아, 識의 性이 源이 없어, 六種의 根塵을 因하여 妄出하느니라. 네가 지금 이 會의 聖衆을 徧觀하되 눈으로 차례차례 둘러보나니, 눈으로 둘러보는 것은 鏡中과 같아서 別로 分析함이 없거니와, 너의 識이 次第로 指目하여, 이는 文殊요, 이는 富樓那요, 이는 目犍連이요, 이는 須菩提요, 이는 舍利弗이라 하느니라.

이 識으로 아는 것이 見에서 나느냐, 相에서 나느냐, 虛空에서 생기느냐, 因함이 없이 突然히 생기느냐?

阿難아, 너의 識性이 만일 見에서만 난다면, 明. 暗과 色. 空은 없을 것이니, 네 가지가 반드시 없으면, 네 見도 없으리라. 見의 性도 없을 것이니, 무엇으로부터 識을 發하겠느냐?

만일 너의 識性이 相에서 난다면, 見으로부터 나는 것은 아니리니 明도 보지 않고 暗도 보지 않을 것이며, 明과 暗을 보지 않는다면, 色도 空도 없으리니, 相도 없거니 識이 무엇으로부터 發하겠느냐?

만일 虛空에서 생긴다면, 相도 아니고 見도 아니니라. 見이 아니면 分辨함이 없어, 能히 明. 暗. 色. 空을 알지 못할 것이며, 相이 아니면 緣이 滅하여서 見. 聞. 覺. 知가 安立할 곳이 없으리라.

이 非相. 非見에 處한다면, 空이라면 없는 것과 같은 것이요, 있다 하여도 物象과는 같지 아니하리니, 비록 네 識을 發한들 무엇을 分別하겠느냐?

만일 因함이 없이 突然히 생긴다면, 어찌하여 낮에는 明月을 認識하지 못하느냐?

네가 다시 자세하게 생각하고 微細하게 살피라. 見은 네 눈에 의지하였고, 相은 前境에 미루는 것이니, 形狀할 수 있는 것은 有가 되고, 形狀할 수 없는 것은 無가 되거니와, 이와 같은 識의 緣은 무엇을 因하여 나느냐?

識은 動하고 見은 澄하여서, 和도 아니고 合도 아니니, 聞聽과 覺知도 역시 그러하며, 識이 의지한데 없이 스스로 생기지도 아니하리라.

만일 識心이 本來 의지한 데가 없다면, 了別하고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도 圓滿하고 湛然하여 性이 조차온데가 없는 것이라, 저 虛空이나 地. 水. 火. 風과 함께 七大라고 할 것인 줄을 알아야 하리니, 性이 참되고 圓融하여 다 如來藏이라, 本來 生滅이 없느니라.

阿難아, 너의 마음이 麤浮하여, 보고 듣고 了知하는 것이 本來 如來藏인 줄을 알지 못하나니, 네가 이 六處의 識心을 보라. 같으냐, 다르냐, 空이냐, 有냐? 같은 것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요, 空도 아니요, 有도 아니냐?

네가 元來 알지 못하는구나. 如來藏中에 性이 識인 明知와, 覺明인 眞識이, 妙覺이 湛然하여 法界에 周徧하여 있으면서, 十方虛空을 含吐하나니, 어찌 方所가 따로 있겠느냐?

業을 따라 發現하는 것이어늘, 世間이 無知하여 因緣이라 自然性이라 疑惑하나니, 다 識心으로 分別하고 計度하는 것이라 다만 言說이 있을 뿐이요, 전혀 實義가 없느니라.』

 

15, 阿難이 기뻐하다

 

이 때에 阿難과 大衆들이 佛如來께서 微妙하게 開示함을 받잡고, 身心이 蕩然하여 걸림이 없어지고, 大衆들이 마음이 十方에 가득함을 各各 알았고, 十方의 虛空을 보되 손에 가진 葉物을 보듯하며, 一切世間에 있는 것들이 모두 菩提의 妙明한 마음인 줄 알았다.

心精이 周徧하고 圓滿하여 十方을 含裏하였는지라, 父母가 낳아준 身體를 反觀하니, 마치 十方의 虛空中에 한 微塵을 날린 것이 있는 듯 없는 듯 하고, 또 大海에 한 浮漚가 흐르는 것이 起하고 滅함이 의지한데 없는듯하며, 本妙한 마음이 常住하여 滅하지 아니함을 얻은 줄을 分明하게 스스로 알았다.

佛께 禮拜하고 合掌하여 未曾有함을 얻고는 如來의 앞에서 偈를 말하여 佛을 讚歎하였다.

妙湛하고 摠持하고 不動하시는 世尊 首楞嚴의 王이어서 世上에 希有하외다.

億劫동안 顚倒한 妄想을 銷滅하고 阿僧祗劫을 아니 지내고 法身을 얻게 하였나이다.

나도 지금 果位 얻어 寶王 이루고 이와 같은 恒沙衆生 건져지이다.

이러한 深心으로 微塵刹土 받잡는 것이 佛恩울 갚는다 하겠나이다.

願하노니, 世尊께서 證明하소서. 五濁惡世에 誓願코 먼저 들어가

만일에 한 衆生만 成佛하지 못하여도 여기에서 涅槃을 取하지 않겠나이다.

大雄하고 大力하고 大慈悲하신 이여, 바라건대 微細한 惑을 끊게 하시고

하루바삐 無上覺에 오르게하여 十方의 法界에서 道場에 앉게 하소서.

舜若多의 性은 銷亡할 수 있다하온들 爍迦羅한 마음이야 動轉할 理 있으리까?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第四

 

16, 世界와 衆生이 생기던 일

 

이 때에 富樓那彌多羅尼子가 大衆中에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合掌하고 공경하여 佛께 사뢰었다.

『大威德世尊이시여, 衆生들을 爲하여 如來의 第一義諦를 잘 敷演하시나이다. 世尊께서 항상 推獎하시기를 [說法하는 사람中에 제가 第一이라]고 하시었사오나, 이제 如來의 微妙한 法音을 듣사오니, 마치 귀먹은 사람이 百步 밖에서 蚊蚋의 소리를 듣는 것 같사와, 本來 보지도 못하옵는데 어떻게 들을 수 있겠나이까?

佛께서 비록 分明하게 말씀하여 저의 疑惑을 덜게 하시오나, 아직도 이 뜻을 자세하게 알지 못하여 끝까지 疑惑이 없지 못하나이다.

世尊이시여, 阿難 같은 이는 비록 깨달았다고 하나, 익힌 漏가 없어지지 못하였거니와, 저희들이 會中에서 無漏를 오른 이도 비록 諸漏가 다 하였사오나, 지금 如來의 말씀하시는 法音을 듣삽고 오히려 疑悔에 얽히었나이다.

世尊이시여, 만일 世間의 온갖 根. 塵. 陰. 處. 界 等이 다 如來藏이어서 淸淨하고 本然하다 하오면, 어찌하여 忽然히 山. 河. 大地의 모든 有爲의 相이 생기었사오며, 次第로 遷流하여 마치었다가 다시 비롯하나이까?

또 如來께서 말씀하시기를 [地. 水. 火. 風의 本性이 圓融하여 法界에 周遍하여 湛然히 常住한다] 하시었나이다. 世尊이시여, 만일 地의 性이 周遍하다면 어떻게 水를 容納하며, 水의 性이 周遍하다면 火는 생기지 못할 것이온데, 어떻게 水. 火의 二性이 함께 虛空에 周遍하여 서로 陵滅하지 아니 하나이까?

世尊이시여, 地의 性은 障礙하고, 空의 性은 虛通한 것이온데, 어떻게 둘이 함께 法界에 周遍하나이까? 제가 이 이치의 歸趣를 알지 못하오니, 願컨대 如來께서 大慈를 宣流하사 저의 迷雲을 열어주소서.』

大衆들과 함께 이렇게 말하고는, 五體를 땅에 던지고 如來의 위없는 慈誨를 欽仰하고 있었다.

이 때, 世尊께서 富樓那와 會中에 漏가 다한 無學인 阿羅漢들에게 말씀하였다.

『如來가 今日에 이 會衆을 爲하여 勝義中의 眞勝義性을 宣說하여 會中의 定性聲聞과 二空을 얻지 못한 이들과 上乘으로 回向한 阿羅漢들로 하여금, 一乘의 寂滅場地이며 참된 阿鍊若인 正修行할 길을 모두 얻게 하리니, 너희들은 자세하게 들으라. 너를 爲하여 말하리라.』

富樓那等이 佛의 法音을 欽仰하여 잠자코 듣잡고 있었다.

佛이 말씀하였다.

『富樓那야, 네 말대로 [淸淨하고 本然하다면 어찌하여 忽然히 山. 河. 大地가 생기었는가]하거니와, 너는 如來가 항상 말하기를 [性覺은 妙明하고 本覺은 明妙하니라]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느냐?』

富樓那가 말하였다.

『그러하외다. 世尊이시여, 佛께서 이런 이치를 항상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들었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네가 覺이라 明이라 稱하는 것은 性이 明한 것을 稱하여 覺이라 한다 하느냐? 覺이 不明한 것을 稱하여 明할 覺이라 한다 하느냐?』

富樓那가 말하였다.

『만일 이 밝힐 것 없는 것을 覺이라 이름한다면, 所明이 없겠나이다.』

佛이 말씀하였다.

『[만일 밝힐 것 없는 것을 覺이라 한다면 明할 覺이 없겠다] 하거니와, 所가 있으면 覺이 아니요, 所가 없으면 明이 아니니, 明이 없으면 覺의 湛明한 性이 아니니라.

性覺은 반드시 밝건마는, 虛妄하게 明覺이 되었느니라.

覺은 所明이 아니언만, 明을 因하여 所를 세우게 되고, 所가 이미 妄으로 섰으므로 너의 妄能을 내었으며, 同과 異가 없는 가운데서, 熾然하게 異를 이루고, 저 異한 바를 異하다 하므로, 異를 因하여 同을 세웠으며, 同과 異를 發明하고서는, 이를 因하여 다시 同이 없고 異가 없음을 세우느니라.

이렇게 擾亂함에 相待하여 疲勞함이 생기고, 疲勞함이 오래 되어 塵을 發하여서 自相이 渾濁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塵勞와 煩惱를 引起하느니라. 起하여서는 世界가 되고 靜하여서는 虛空이 되나니, 虛空은 同하고 世界는 異한지라, 저 同異가 없는 것이 참으로 有爲法이 되었느니라.

覺의 明과 空이 昧가 相待하여 搖動함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風輪이 있어 世界를 執持하였느니라.

空을 因하여 搖動함이 생기고, 明을 굳혀서 礙가 되나니, 저 金寶는 明覺이 堅礙하여진 것이라, 그러므로 金輪이 있어 國土를 保持하였느니라.

覺을 굳혀 金寶가 되고, 明을 흔들어 風이 나서는 風과 金이 서로 摩擦하나니, 그러므로 火光이 있어 變化하는 性이 되었느니라.

寶의 밝은 것은 潤을 내고, 火光은 위로 蒸하나니, 그러므로 水輪이 있어 十方世界를 含潤하였느니라.

火는 騰하고 水는 降하여서, 서로 發하여 堅礙가 成立하는데 젖은 편으로는 巨海가 되고, 마른 편으로는 洲潬이 되었나니, 이런 이치로 大海中에는 火光이 항상 일어나고, 洲潬中에는 江河가 항상 흐르느니라.

水의 勢力이 火보다 劣하면, 凝結하여 高山이 되나니, 그러므로 山石의 擊하면 火焰이 되고, 融泮하면 水가 되느니라.

土의 勢力이 水보다 劣하면, 抽出하여 草木이 되나니, 그러므로 林藪가 타면 土가 되고, 쥐어짜면 水가 되느니라.

妄을 交互하여 發生하여 번갈아 서로 種子가 되나니, 이런 因緣으로 世界가 相續하느니라.

또 富樓那야, 明인 妄이 다른 것이 아니라, 覺의 明이 허물이 되는 것이니, 所인 妄이 이미 成立되면, 밝은 理가 넘어가지 못하느니라. 이런 因緣으로 듣는 것은 聲을 超出하지 못하고, 보는 것은 色을 超出하지 못하느니라.

色. 香. 味. 觸의 六妄이 成就하고, 이로 因하여 見. 覺. 聞. 知를 分開하여, 같은 業이 서로 얽히고, 合하고 離하여 成하며 化하느니라.

明을 보아서 色이 發하고, 밝게 보고는 想을 이루는데, 見이 다르면 미워지고, 想이 같으면 사랑하며, 사랑을 흘러 넣어 씨가 되고, 想을 받아들여 胎가 되는데, 交遘하여 生을 發할 적에 같은 業을 吸引하나니, 이런 因緣으로 羯羅藍과 遏蒲曇等이 생기느니라.

胎. 卵. 濕. 化가 제각기 應할 바를 따르는데, 卵은 想으로 생기고, 胎는 情을 因하여 있게 되고, 濕은 合하여 感하고, 化는 離하므로 應하느니라.

情. 想. 合. 離가 서로서로 變昜하되, 業으로 받게 되어 飛하고 沈함을 따르나니, 이런 因緣으로 衆生이 相續하였느니라.

富樓那야, 想과 愛가 함께 맺혀서 愛를 能히 여의지 못하므로, 모든 世間의 父母와 子孫이 서로 낳아 끊이지 않나니, 이것들은 欲貪으로 根本이 되느니라.

貪하는 愛가 함께 滋하여, 貪을 能히 그치지 못하므로, 모든 世間의 卵生. 化生. 濕生. 胎生이 힘의 强弱을 따라 번갈아 서로 呑食하나니, 이것들은 殺貪으로 根本이 되느니라.

人이 羊을 먹으면, 羊은 죽어 人이 되고 人은 죽어 羊이 되어서, 이렇게 十種으 生類들이 죽고 죽고 나고 나면서, 번갈아 와서 서로 먹되, 惡業으로 함께 나서 未來際를 다하나니, 이것들은 盜貪으로 根本이 되느니라.

너는 나의 命을 지고, 나는 너의 빚을 갚아서, 이런 因緣으로 百千劫을 지내면서 항상 生死에 있느니라. 너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고 나는 너의 얼굴을 사랑하여, 이런 因緣으로 百千劫을 지내면서 항상 *縳에 있느니라.

殺. 盜. 婬 세가지가 根本이 되는 것이니, 이런 因緣으로 業과 果가 相續하느니라.

富樓那야, 이와 같은 세가지가 顚倒하게 繼續하는 것은 모두 覺明의 明了知하는 性이 了知함을 因하여 相을 發하며, 妄見으로부터 生하나니, 山. 河. 大地의 모든 有爲相이 次第로 遷流하며, 이 虛妄함을 因하여 마치고 다시 비롯하느니라.』

富樓那가 말하였다.

『만일 이 妙覺의 本妙한 覺明이, 如來의 마음으로 더불어 增하지도 않고 滅하지도 않는데, 까닭없이 山. 河. 大地의 모든 有爲相이 忽然히 생겼다면, 如來께서 이제 妙空明覺을 얻었사오니, 山. 河. 大地의 有爲인 習漏가 언제 다시 생기겠나이까?』

佛이 말씀하였다.

『富樓那야, 마치 迷한 사람이 어떤 聚落에서 南을 惑하여 北이라 한다면, 이 迷가 迷함을 因하여 있는 것이냐, 悟를 因하여 생긴 것이냐?』

富樓那가 말하였다.

『이 迷한 사람은 迷를 因하지도 않았고, 悟를 因하지도 않았나이다. 왜냐하오면 迷가 本來 뿌리가 없사온데 어떻게 迷를 因했다 하며, 悟에서는 迷가 생기는 것이 아니온데 어떻게 悟를 因했다 하오리까?』

佛이 말씀하였다.

『그 迷한 사람이 한창 迷하였을 적에 어떤 悟한 사람이 指示하여 깨닫게 한다면, 富樓那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비록 迷하였었으나, 이 聚落에서 다시 迷가 생기겠느냐?』

『아니하리이다. 世尊이시여.』

『富樓那야, 十方의 如來도 또한 그러하니라. 이 迷가 根本이 없어 性이 끝까지 空하니라. 예전에 本來迷하지 않았던 것이 迷覺이 있는 듯 하지마는, 迷를 깨달아 迷가 滅하면, 覺에서는 迷가 생기지 않느니라.

또, 翳한 사람이 虛空中의 華를 보다가도, 翳한 病이 없어지면, 華가 虛空에서 滅하나니, 어떤 愚人이 저 空華가 滅한 자리에서, 空華가 다시 나기를 기다린다면, 네가 보기에 이 사람을 어리석다 하겠느냐, 智慧롭다 하겠느냐?』

富樓那가 말하였다.

『虛空에 元來 華가 없는 것을 虛妄하게 華의 生滅을 보는 것이오니, 華가 虛空에서 滅함을 보는 것부터 이미 顚倒함이옵거늘, 다시 나기를 기다린다면, 이것은 實로 미친 바보이온데, 어찌 이런 미친 사람을 어리석다 智慧롭다 하오리까?』

佛이 말씀하였다.

『네 소견이 그렇다면, 어째서 諸佛如來의 妙覺의 明空에서 언제 다시 山. 河. 大地가 생기느냐고 묻느냐?

또 金鑛에 精金이 섞였으나, 그 金이 한 번 純金이 되면, 다시는 鑛石에 섞이지 않으며, 마치 나무가 재가 되면, 다시 나무가 되지 않는 것 같아서, 諸佛如來의 菩提와 涅槃도 그와 같느니라.

富樓那야, 또 네가 묻기를 [地. 水. 火. 風의 本性이 圓融하여 法界에 周偏하였다면, 水性과 火性이 서로 陵滅하지 않느냐?] 疑心하고, 또 [虛空과 大地가 다 法界에 周遍하였으면, 서로 容納하지 못하리라]하거니와, 富樓那야, 마치 虛空의 體가 여러 가지 모양은 아니지마는, 여러 가지 모양이 發揮함을 拒否하지 않음과 같느니라.

왜냐하면, 富樓那야, 저 太虛空이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둡고, 바람이 불면 動搖하고, 비가 개면 맑고, 기운이 엉기면 흐리고, 먼지가 쌓이면 흙비가 되고, 물이 맑으면 비치느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여러 方面의 모든 有爲相이, 저것들로 因하여 생기느냐, 虛空에 있는 것이냐?

만일 저것들로 因하여 생긴다면, 富樓那야, 해가 비칠 적에 그것이 해의 밝음일 것이니, 十方의 世界가 同一한 햇빛일 터인데, 어찌하여 空中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게 되느냐? 만일 그것이 虛空의 밝음이라면, 虛空이 스스로 비칠 것인데, 어찌하여 밤중에 구름이 끼었을 적에는 빛을 내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알아라. 이 밝은 것은 해 때문도 아니요, 虛空 때문도 아니요, 虛空이나 해와 다르지도 아니 하니라.

相으로 보면 元來 虛妄하여 指陳할 수 없나니, 마치 空華에서 空菓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 같거늘, 어떻게 서로 陵滅하지 않는 뜻을 詰難하겠느냐?

性으로 보면 元來 眞이어서 오직 妙覺明뿐이니, 妙覺明한 마음이 본래 水도 火도 아니어늘, 어찌하여 서로 容納하지 못하리라고 묻느냐?

참으로 妙한 覺明도 역시 이와 같아서, 네가 空으로 發明하면 空이 나타나고, 地. 水. 火. 風으로 各各 發明하면 各各 나타나고, 한꺼번에 發明하면 함께 나타나느니라.

어떤 것이 함께 나타남이냐? 富樓那야, 한 물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거든, 두 사람이 물속에 해를 함께 보다가 東쪽과 西쪽으로 제각기 가면, 물 속의 해도 두 사람을 各各 따라가되, 하나는 東으로 가고, 하나는 西로 가서 本來 標準이 없나니, [이 해가 하나인데 어찌하여 各各 가느냐] [各各가는 해가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로 나타났더냐]하고 따질것이 아니니, 완연히 虛妄하여 憑據할 수 없느니라.

富樓那야, 네가 色과 空으로써 如來藏에서 相傾하고 相奪하므로, 如來藏도 따라서 色과 空이 되어 法界에 周遍하나니,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바람은 動하고 虛空은 맑고 해도 밝고 구름은 어둡나니, 衆生이 迷悶하여 覺을 등지고 塵에 合하므로, 塵勞를 發하여 世間의 相이 있느니라.

나는 妙明하여 不滅 不生함으로써 如來藏에 合하므로, 如來藏이 오직 妙覺明이어서 法界에 圓照하나니,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一이 無量이 되고 無量이 一이 되며, 小한 가운데 大를 나투고, 大한 가운데 小를 나투며, 道場에서 動하지 않고, 十方世界에 周遍하며, 몸에 十方의 無盡한 虛空을 含受하며, 一毛端에 寶王刹을 나타내고, 微塵속에 앉아서 大法輪을 轉하나니, 塵을 滅하고 覺에 合하므로, 眞如의 妙覺明한 性을 發하느니라.

如來藏의 本來 妙圓한 마음은 心도 아니고, 空도 아니고, 地도 아니고, 水도 아니고, 風도 아니고, 火도 아니며, 眼도 아니고, 耳. 鼻. 舌. 身. 意도 아니며, 色도 아니고, 聲. 香. 味. 觸. 法도 아니며, 眼識界도 아니고, 乃至 意識界도 아니니라.

明도 無明도 아니고, 明과 無明이 다함도 아니며, 乃至 老도 아니고, 死도 아니고, 老와 死가 다함도 아니며, 苦도 아니고, 集도 아니고, 滅도 아니고, 道도 아니고, 智도 아니고, 得도 아니니라.

檀那도 아니고, 尸羅도 아니고, 毗梨耶도 아니고, 羼提도 아니고, 禪那도 아니고, 針刺若도 아니고, 波羅蜜多도 아니며, 乃至 怛闥阿竭도 아니고, 阿羅訶도 아니고, 三耶 三菩도 아니고, 大涅槃도 아니고, 常도 아니고, 樂도 아니고, 我도 아니고, 淨도 아니니라.

이렇게 世와 出世가 모두 아니므로, 如來藏의 元來 明하고 妙한 마음은, 곧 心이요, 곧 空이요, 곧 地요, 곧 水요, 곧 風이요, 곧 火이며, 곧 眼이요, 곧 耳. 鼻. 舌. 身. 意며, 곧 色이요, 곧 聲. 香. 味. 觸. 法이며, 곧 眼識界요, 乃至 곧 意識界니라.

곧 明이요 無明이며, 明과 無明이 다함이며, 乃至 곧 老요, 곧 死이며, 곧 老와 死가 다함이며, 곧 苦요, 곧 集이요, 곧 滅이요, 곧道요, 곧 智요, 곧 得이니라.

곧 檀那요, 곧 尸羅요, 곧 毗梨耶요, 곧 羼提요, 곧 禪那요, 곧 般刺若요, 곧 波羅蜜多며, 乃至 곧 怛闥阿竭이요, 곧 阿羅訶요, 곧 三耶三菩요, 곧 大涅槃이요, 곧 常이요, 곧 樂이요, 곧 我요, 곧 淨이니라.

이렇게 모두가 곧 世와 出世이므로, 곧 如來藏의 妙明한 마음의 元이 卽을 여의고 非를 여의었으며, 이 卽이요 卽이 아니어늘, 어떻게 世間의 三有衆生이나 出世間의 聲聞과 緣覺들이 그의 아는 마음으로, 如來의 無上菩提를 測度하여 世上의 言語로써 佛의 知見에 들어가겠느냐?

마치 琴. 瑟. 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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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범석이아빠 2011.04.26 00:09

    운허스님의 번역과 동국역경원의 번역이 다르네요

  • ?
    지화진성 2011.06.28 20:57

     언젠가는 한자 본을 해설본 없이 직접 볼수 있기를 바라며, 받아 읽겠습니다.

  • ?
    한돌 2011.09.22 13:32

     파일받아 열심히 공부하겠읍니다 감사합니다

  • ?
    키크는나무 2016.05.27 15:47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능엄경

밀교사상과 선종의 사상을 설한 대승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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