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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의 인물탐구]탈북자 결연사업 추진 법타 스님 “3만2000명도 감당 못하면, 2500만은 어떻게”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법타 스님이 서울 성북동 통일법당에서 탈북자 자매결연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법타 스님이 서울 성북동 통일법당에서 탈북자 자매결연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탈북한 한모씨가 여섯 살 아들과 함께 서울에서 굶어 숨진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나라의 사회복지 전달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아쉬운 것은 이를 보도한 특정 언론은 탈북자임을 강조해 남북갈등 요소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경북 영주에 있는 은해사 회주 법타 스님은 일찌감치 탈북자 결연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민주평통 운영위원 임명장을 받고 ‘탈북자 자매결연사업’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임명장을 받기 전인 9월 27일 서울 성북동에 있는 조그만 ‘통일법당’에서 그를 만났다.

-얼마 전 탈북자 모자가 굶어죽었다. 지금도 여전히 탈북자가 발생하고 있나.

“탈북여성 대부분이 중국인에게 인신매매당한 피해자다. 돈 벌러 중국에 갔다가 인신매매를 당한 뒤 ‘억지 결혼’해 애 낳고 좀 자유로워지니 도망치는 것이다. 만주·시베리아 일대에 그런 탈북자가 20만명 정도다. 운 좋은 사람이 남한으로 와 지금까지 3만2000명 정도 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남한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렵게 산다. 그들에게 무연자비(無緣慈悲), 즉 조건 없이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

민주평통 50인 운영위원 중 한 명

-민주평통에서 ‘탈북자 결연사업으로 작은 통일을 이루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언제부터 하던 일인가.

“개인적으로 10여년 전부터 탈북자 40여명의 양부모 맺기 사업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민주평통 운영위원 임명장을 받고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다. 민주평통에는 50명의 운영위원이 있고 자문위원만 1만9000명이다. 이들 전부 지역 유지로 명함이나 새기고 배지 달고 폼 잡고 다닌다. 그동안 민주평통은 세미나 등을 많이 했던데 이론이 부족해 통일을 못하나. 탈북자 3만2000명도 감당 못하는데 통일이 돼서 2500만명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나.”

-스님의 휴대폰 음악소리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아무리 정치를 잘해도 끝은 통일이다. 전쟁을 통한 무력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이다. 이는 후손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래서 어린아이들 노래로 했다.”

탈북자를 돕는 사업은 종교인으로서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사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타 스님은 남북문제에 관해서 거의 ‘프로’ 수준이다. 그가 민주평통 1만9000명의 자문위원(국내 1만5400명, 해외 3600명) 중에도 ‘핵심’인 50인 운영위원의 한 명인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일찍부터 ‘통일사업’에 뛰어들어 불교계는 물론 범종단, 통일단체에서도 손꼽히는 인물이다.

법타 스님은 1989년 7월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 전대협이 임수경 학생을 파견해 큰 반향을 일으킨 그 행사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법타 스님은 서의현 총무원장에게 북한에 간다고 말하고 홍콩을 거쳐 베이징으로 갔다. 그리고 6월 25일 주중 북한대사관에 가서 ‘미국 학생’ 신분으로 비자를 받고 평양행 비행기를 탔다.

기자가 ‘서 총무원장이 방북을 승인했는가’라고 묻자 그는 “허락할 리가 있나, 또 허락하지 않는다고 안 가나, 그냥 통보한 것이지”라며 “내가 임수경보다 앞서 30여년 만에 혼자 북에 들어간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그해 3월 문익환 목사는 소설가 황석영과 재일교포 작가 정경모 등과 같이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나라 안팎은 온통 ‘통일의 꽃’ 임수경에게만 관심이 쏠렸지 그의 방북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귀국한 그는 1992년 사단법인 평화통일불교협회(평불협)를 만들어 ‘통일보살’ 운동을 시작했다. 민족고(民族苦)와 사회고(社會苦)의 원인은 분단이라는 논리로 월간지 <하나로>를 발행했다. 그는 “첫 세미나로 ‘불교와 통일’을 했고, 다음 세미나 주제로 ‘주체사상과 불교’를 하기 위해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를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면서 “잡지 <하나로>에 이런 세미나를 한다는 안내광고를 낸 것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법타 스님이 서울 성북동 통일법당에서 탈북자 자매결연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법타 스님이 서울 성북동 통일법당에서 탈북자 자매결연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지금까지 100여 차례 북한 방문

1994년 7월 그는 남영동 치안분실로 끌려갔다. 그는 “박종철처럼 물고문은 안 당했지만 인간의 자존심이 완전히 말살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돼 7년간 지루한 재판을 받아야 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 비로소 사면·복권이 됐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도 통일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97년 북측과 불교 조사, 사찰 복원 등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대형 수해 등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는 ‘고난의 행군’ 중이었다. 그는 “그때 ‘밥이 통일이고 밥이 평화다’라는 말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97년 황해도 봉산군에 있는 정방산 성불사에 국수공장을 지었다. 우리 가곡 <성불사의 밤>에 등장하는 바로 그 절이다. 그가 이곳에 국수공장을 지은 것은 북한에 성불사를 비롯한 70여개 유서 깊은 절이 있음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그는 “98년부터 금강국수공장이 가동되고 인천항에서 진남포항으로 매달 밀가루 60톤씩을 실어 날라 7800명 분의 국수를 만들었다”면서 “고난의 행군 시기 북녘 동포를 먹여 살리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비용은 통일부 지원과 회원·신도의 성금으로 충당했다. 통일부 집계로 이 국수공장을 통해 북에 50억원 가까이 지원한 것으로 돼 있다. 국수공장은 평양에 한 곳 더 세워졌고 이는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지원을 금지한 2000년 5·24조치 전까지 계속했다. 법타 스님은 그동안 평양을 50~60번, 금강산을 33번 가는 등 100여 차례 방북했다. 가장 최근에 간 것은 2011년이다. 묘향산 보현사에서 열린 ‘해인사 팔만대장경 1000년 조국통일 기원 남북 불교도 합동법회’에 참석했다.

현재 남북교류는 완전히 막혀 있다.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감격적인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본 지 불과 1년 만이다. 북측은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10월 5일 미국과 실무회담을 여는 등 한반도 주변 상황이 변하고 있다. 법타 스님은 “분단도 타의에 의해 됐지만, 지금 통일도 타의에 좌우되고 있다”면서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모두 우리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타 스님은 이런 상황에서 남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이해학 목사, 김종수 신부, 김원웅 광복회장 등과 ‘겨레살림 공동체’를 만들어 지난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한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관계자를 만나 남북 성지순례를 논의했다. 그는 “유엔·미국 제재가 심하니 종교계가 북에 있는 절과 성당·교회 성지순례를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면서 “일단 숨통을 틔워보자”고 말했다. 그는 또 10월 15일 평양에서 열리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축구 아시아 2차예선 남북 경기를 관람할 남측 응원단 준비도 하고 있다.

-통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뭔가. 혹 가족 중 통일운동을 하다 고통을 받았거나 이산가족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것 전혀 없다. 미국에 공부하러 가서 처절하게 느꼈다. 우리 민족의 고통은 분단 때문임을 절감했다. 게다가 종단이나 스님들은 통일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어 나라도 나서게 됐다.”

-유독 평화를 강조한다. 물론 불교의 가르침이겠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가 출가해 동국대 2학년을 마친 1968년 월남전에 끌려갔다. 사단 수색중대에서 극한상황을 겪어보니 생과 사가 둘이 아니더라. 그래서 전쟁을 통한 통일은 안 된다고 단언한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것이 전쟁이다. 살상을 했나.

“안 했다. 밤에 1개 분대씩 매복하는데 베트콩을 봤는데도 총을 쏘지 않고 그냥 지나가라고 뒀다. 나는 분대원들에게 염주를 쥐어주며 관세음보살을 외우게 했다.”

-직접 전투에서 겪은 참상은 어떠했나.

“헬기를 타고 적지에 뛰어내리는데 고참이 제일 먼저 뛰어내리고 다음은 신병이, 마지막에 고참이 뛰어내린다. 총알이 날아오는데 뛰어내려야 했다. 베트콩 지휘관을 사살했는데 피가 바위에 혈죽처럼 튀었다. 고참병이 신병 담력을 키운다고 그 월맹군 사체의 음낭을 만지라고 했다. 그 음낭을 만졌던 신병 하나가 피×을 싸며 기절해 후송 보낸 적이 있다.”

-법타 스님이 주지로 있던 은해사는 경북 영천에 있다. 영천에 3사관학교가 있고, 대구·경북의 보수적 분위기에서 ‘빨갱이 스님’으로 통하면 신도들이 오는가.(웃음)

“누구는 주지가 ‘전라도 스님’이라고 한다.(웃음) 내가 거기 주지를 12년간 했고 신도도 많이 온다. 내가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라고 다 안다. 특히 대구·경북 오피니언 리더들과 통한다.”

법타 스님은 지난 5월 12일 부처님 오신 날에 은해사를 찾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무례를 꾸짖어 화제가 됐다. 황 대표는 대구·경북지역 국회의원 7~8명과 은해사를 찾았다. 그런데 황 대표는 합장도 않고, 관불의식도 손을 가로지으며 거부했다. 법타 스님은 국회의원에게 “부처님에게 절하는 것과 어른에게 절을 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라며 “교회 장로인 고 김영삼 대통령도, 이명박 전 대통령도 다 했다”고 비난했다. 이 사실은 <경향신문>을 통해 단독 보도됐다.

광주민중항쟁을 현장에서 목격
법타 스님의 속세 얘기를 들었다. 스님은 1946년 4월 8일 초파일에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중학교부터 불교학생회를 열심히 했다. 청주상고를 마친 1965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추담 스님을 은사로 입산했다. 추담 스님은 한용운 선생과 독립운동을 같이 하던 사이다. 그는 1967년 장학생으로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진학했고, 76년에 이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컸고, 특히 박정희·김종필 군사정권이 싫었다”고 말했다.

1980년 광주 무등산에 있는 원효사 주지를 하면서 광주민중항쟁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그는 “전남대·조선대 불교학생회에 강의하다 현장을 꼬박 목격했고, 특히 전남도청 앞 무덕전에 있는 80여구 시신 앞에서 일일이 염불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5년 <불교신문> 부사장을 마치고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리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대구불교방송 초대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스님은 남북화해에 기여한 공로로 2004년 만해대상과 민화협과 <경향신문>이 주최하는 제2회 민족화해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정일형·이태영 민주통일상’, 2011년에는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평화통일불교협회 이사장 등으로 후원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와중에 공부를 계속, ‘조선불교도연맹 연구’로 북한학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법타 스님은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행위를 하든지 주인이 되라. 그 자리가 진리의 자리, 부처님의 자리다. 이것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의연 스님의 가르침이다. 특히 ‘심생즉 종종법생(心生卽 從從法生) 심멸즉 종종법멸(心滅卽 從從法滅)’ 즉 마음이 생기면 모든 것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이것이 ‘일체유심조’,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원효 스님의 가르침이다. 특히 민중불교, 민중과 함께 통일운동을 하는 것이 바로 원효 스님의 가르침이다. 후배들도 이런 것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051428001&code=940100&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row2_thumb&C#csidx9f0a5fa8bbf244580908fc6829d05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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